▲ 유인봉 대표이사

얼마 전 앞마당에 있던 엄나무를 부득이 잘라야 했다. 오랫동안 봄이면 나물을 뜯어먹던 일이 고마웠는데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다.

베어낸 나무를 한 쪽에 덩그마니 기대어 놓았는데 한 달이 더 지나자 나무 윗부분쪽으로 개미처럼 작은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뿌리도 없고 물기도 없이 그 나무가 살겠다고 순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생명의 흔적이 말하고 있었다.

“나 아직 살아있어”
보는 이들은 심어봤자 죽을 거라 했다. 하지만 물에 당분간 담갔다가 땅에 옮겨 심었더니 어느 사이 아기 손 만 한 잎새로 커져간다. 생명력과 복원력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고 아침이면 엄나무의 잎이 더 크게 자라 있음을 보는 게 참 고맙다. 그래 잖아 미안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부디 본래 서 있던 키만큼 더 자랄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바라보게 된다.

그 뿐인가, 산길을 걷다 보면 오랜 세월 서 있다가 이제는 아예 누워버린 나무들이 간혹 눈에 띄인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누워버렸든지 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은 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색의 잎새를 가졌다. 이끼가 끼기는 했지만 찬란한 생명의 잎 새를 다시 세상에 선보인다.

여기서도 “나 아직 살아있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참으로 생명의 오랜 “견딤”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한다.

행여 모든 것이 다 끝 난 것 같은 쓰러짐의 지경이라도 마지막 한 호흡을 놓치지 않고 살아있음을 보는 것은 사뭇 진지해 진다.

넘어져있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뿌리가 땅에 닿아 살아있으면 다시 새롭게 잎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자연의 모습이고 희망이다.

근본이나 본질에 닿아 있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희망인가!
넘어졌다고 죽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도 마치 죽음 같은 무너짐과 넘어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넘어졌다고 죽은 것이 아니다. 고통스럽더라도 호흡이 붙어있으면 정신차리고 일어나면 산다.

작은 채소밭을 가꾸어보아도 터를 잡은 것들은 무서울 정도로 가속도가 붙으며 생장력을 자랑한다.
이 년 째 엉터리 텃밭 농사를 지어보니 푸른 상추 잎도 따먹고 돌아서서 이삼일 후면 다시 풍성해지는 그 생명에 대해 느낌이 크다.

어쩌면 저렇게 무럭무럭 자라는 것인지 고마울 따름이다. 한 잎 두 잎 따서 참 고맙게 먹는다. 비라도 한 줄금 뿌려지면 잎 새 들은 쉬지 않고 쑥쑥 성장해나간다.
경험할 수록 자연은 우리의 스승임에 틀림없다!

심은 대로 나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심지 않고 거두고자 바라고 마음씨를 쓴다 하면 도둑인 것이다.

생명이든 죽음이든 혹은 원망이든 씨앗을 뿌렸으면 그대로 언젠가는 되받을 수밖에 없는 것, 생각하면 때로는 섬뜩하기조차하다.

해마다 쑥이 나던 곳은 갈아엎지 않으면 다시 이듬해도 쑥이 무성해지고 망초대는 처음에는 여린 잎이지만 매우 커져서 아무 쓸데가 없기도 하다.

인간세상에서 실망하고 조급해하고 때로는 절망하던 일들도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보면 그 속에 답이 있다. 그 속에 들어가면 치유가 이루어진다.

인생도 자연이라 그 질서와 같이 간다. 뿌리가 안착되어야 모든 것이 질서가 잡힌다. 기본인 뿌리로부터 빨아드려져 흡수한 영양이 줄기로 가고 잎으로 가는 자연 생명의 법들이 우리들의 도시에서도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

도시와 문명에서 송두리째 무시하고 벌여놓은 일들은 무시당한 결과의 참혹한 슬픔과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이들은 단지 오늘의 현상일 뿐 오래전 잘못 심은 일들의 결과가 오늘의 재앙으로 나타났다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씨를 심고 물주고 기다리고 뿌리가 내린 다음 그 뿌리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일이다. 그만큼의 결과가 언젠가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불안하고 평화가 없는 이유이다.

자신이 심은 것은 눈 앞에서 못 거두면 대를 이어 거둔다는 것, 인생은 짧지만 아무렇게 살 수 없게 하는 진리이다. 자연에게 물어보면 안다. 조급함도 서운함도 원망도 다 내려놓고 갈일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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