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이사

날씨가 다시 추워졌다고들 한다. 체감은 그렇다. 하지만 봄바람에 겨울은 뒤로 숨은지 오래이다.
자연은 그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날마다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하루아침 햇볕만 꾸물거려도 우리는 짱짱한 기운을 잃어버리지 않는가!
흙냄새, 들풀향기와 함께 오는 봄바람은 바라보고 나면 어느 사이 싹을 틔워내는 생명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몸이 오그라들게 추웠던 겨울은 손아귀에 만져지지도 않은 봄바람에 이미 실려간다.

작은 것은 큰 것이든 생명의 때가 오면 가고 다시 새 것이 나타난다.
아직은 큰 잎새가 돋아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그싹을 잉태한 나무를 볼 때 참 고맙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다시 한 번 또 한 번의 기회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어디냐는 생각이다.

오래전에 진돗개 한 마리를 기르면서 “희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열 두엇 해를 우리와 살던 식구였는데 어느 날 아침밥을 주려하니 이미 생명을 다한 후였다. 그렇게 큰 희망이가 간 자리가 허전했다.

생각해보니 30여 년 동안 많은 강아지들이 우리와 ‘시간의 인연’속에서 살다가 갔다. 때로는 대문없는 집이다보니 집을 잃은 강아지를 열 두 마리나 함께 살아보았던 적도 있다.

지금은 5일장에서 작은 생명하나를 다시 식구로 데려와 키우고 있다.
그 아이 역시 이름은 “희망이”다.

백번 천번 불러도 좋을 이름 희망이를 날마다 부르며 사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백번 천번 날마다 더 희망이 필요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 오후 아는 이가 작은 아기 강아지 한 마리를 상자에 담아 가지고 왔으니 또 한 식구가 불어난 셈이다.
오자마자 너무 어린 것의 눈을 쳐다보니 그렇게도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린 것들은 순백의 사랑을 타고 와서 마음에 고여 있는 사랑을 불러내는지, 그래서 어제 그 순간부터 그 어린 강아지는 “사랑이”가 되었다.
희망이는 “사랑이”가 없을 때는 참 작고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런데 “사랑이”가 들어오니 “희망이”는 보다 더 크고 질투심이 남아돌만큼 펄펄 뛰며 짖어댄다. 한 녀석만 놓고 볼 때와 두 녀석을 놓고 볼 때의 마음이 다르다. 행여 “희망이”가 “사랑이”를 어찌할까봐 경계를 하게 된다.
둘이 같이 놓으면 어떨까를 생각하다가 잠시는 서로 관망하면서 눈으로부터 사귈 수 있는 시간을 주자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사표시를 꼬리로 하는 녀석들과 나는 말을 건다. 강아지들은 꼬리로 말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반가워해주는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어디가면 그렇게 반가운 인사를 받을까?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앞 사람이 가면 뒤이어 또 반가운 이가 인연의 숨결을 타고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봄바람을 받아들이게 되니 고맙다.

누구든지 헤어짐은 슬프다. 이별이든 사별이든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인연의 시작이며 새로운 기회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모두 다 잃는 법도 없고 단지 돌아 돌아 다시 만나는 것 아닐까?
끊을 수 없는 평생의 인연이건만 수년간 길이 막혀 못 만나던 이를 갑자기 슈퍼마켓 정문에서 마주쳤다.

꼼짝없이 만나지는 순간에 그는 어쩔 줄 몰라했다. 안 만나고 싶었겠지만 나는 덥석 그를 안고 울었다. 안고 또 안고 그도 드디어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꿈속에서 너무 자주 만났어요. 꿈속에서 나 안 봤어요?”
“...”

말을 다할 수는 없지만 끊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나뉘어지지 않는 것들과 나눌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헤어지지 않게 된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살아서 못 만나면 죽어서 볼 것이고, 죽어서 못 만나면 땅의 흙이 되어서라도 합쳐진다.

“희망아”라고 강아지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뒷동산의 큰 나무아래서 이미 나무의 숨결로 피어나고 있을 그 추억의 10년전의 인연 “희망이”를 생각한다.

언제나 인연지고 가면 묻고 다시 또 시작하는 것이 인생 살아가는 인연이 아닐까!
언젠가 그 누구도 우주의 먼지가 아니 갈 생명은 없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에 의해 다시 기억되고 함께 되살아난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은 살이 녹는 아픔이다. 하지만 또 “사랑이” 새롭게 우리를 찾아온다.
“희망”도 “사랑”도 그래서 영원히 우리의 두 팔과 가슴 안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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