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품격 - 미래신문


▲ 유인봉 대표이사

한 달 여의 시간이 꿈처럼 흘렀다. 아들이 군 제대 후 복학해서 다시 방학을 하고, 딸은 졸업 후 다시 학업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과 관계서류 준비로 귀가하니 1000날 만에 모처럼 한 지붕아래 모인 시간이었다.

아들은 아직 군인의 정신으로 더운 여름내내 까맣게 그을리면서 집안 곳곳을 다 치우고, 정리하고, 풀을 깎고 또 다듬고 창고를 정리하면서 구슬땀을 흘렸다.

육체적으로 단련된 대한민국 국군이 어떠한지는 아들을 통해 알았다.

‘원래’라는 것도 없고 ‘안 된다는 것도 없다’는 강인함을 경험해야 했던 아들에게서는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라고 느끼고는 한다.

젊은 시절의 남편보다 어쩌면 더 단단함을 본다. 냄새나는 쓰레기에 덥석 덥석 손을 갖다 대는데 망설임 없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낮아져서 배웠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저 단단함을 넘어 더 부드러워져야 할 산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부부간에서 다 채워지지 못한 에너지도 자식들과의 관계를 통해 채워지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소화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많아야 한다.

딸은 역시 크면 딸이 아니라 친구라고 하더니 그렇게 마음도 잘 맞고 위로자가 되어 주었다.

커진 손이지만 잠을 잘때는 꼭 잡고 잘만큼 다정함으로 정을 채워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관계는 원만한 가족관계가 아닐까. 모든 영양이 공급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원이 되는 힘.

반대로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고 오랫동안 상처가 남을 수 있는 곳도 가족이기도 하다. 아무리 훌륭한 가족이라도 부딪침이 없거나 아쉬움이 없는 관계는 없다!

남편을 만나 살면서 30년 동안 제일 많이 해 낸 일도 설거지였다. 설거지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닦고 또 닦으려 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돌아와서 우리들의 이러저러한 흔적을 발견하고 수리하고 닦아내고 있다.

이제는 부모로서 힘들었던 일들도 자식들에게 벗삼아 오픈하고 이야기하면 치유가 된다.

이제 머리가 큰 자식 앞에서는 아들의 어머니와 딸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풀어놓을 수 있어서 좋다.

작은 일상속에서 이어지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갈등과 용서, 치유를 경험하는 시간속에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여러감정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도 한정적임을 알면서 하루 하루를 헤아리며 잘 보내고자 했다.

사람은 어제의 우아함이 영원한 미래까지 이어지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부모의 힘을 줄어들고 아이들이 클수록 부모의 작은 에너지와 부족함을 들 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다소 당황스럽지만 우리 부부가 잠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고 아이들한테 맞추어서 젊은 정열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정된 한 달여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정성과 수고 그리고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품격있는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이다.

가족은 서로 모가 나도 품고 가야 하고 때로는 날이 선 칼날이라도 잡아야 하는 법을 알아가는 중이다.

일주일 후면 다시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한 세계로 날아간다.

둘 다 자신들의 생각과 품격이 자라날 수 있는 배움터로 보내는데 주저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잠시 착륙한 정거장처럼 집안으로 날아들어온 것이고 앞으로 이런 만남들이 수없이 이어지면서 어느 시간에는 자신들의 성을 구축해 나가리라고 확신한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아이들도 서로 다른, 그리고 서로 같음을 확인하면서 네 식구의 생각과 삶의 다름과 수용을 경험한 한 달 이다.

그리고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될 수도 없고 부모의 세계에 편입되도록 강요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때로는 나의 방법이 더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는 것 같아도 아이들이 잡을 수 있는 방법에 익숙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거울 같아서 이제 부모를 있는 그대로 속까지 다 봐 버릴 수 있을만큼 커 버렸다.

무어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도 덩치도 커져버린 아이들의 만족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비좁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고 부모의 소산의 작음도 느낀다는 것이 솔직함이다.

‘그래 부모보다 더 커져라. 그리고 세상을 느끼거라’

솔직히 그래도 괜찮은 부모가 되려 노력한 적이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역시 부모보다는 더 큰 세계가 필요하다.

부부가 일평생 노력해온 삶의 근거지이지만 세상을 구경하고 경험하는 중에 있는 아이들의 눈에는 아주 작은 초가집이요, 풀 많은 초원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를 넘어서 부모로부터 알을 깨고 나와서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배우고 또 언젠가는 부모가 되어 또다시 자신들의 아이들을 날려보낼 준비를 할 날이 올것이다.

남편보고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해준 것만큼은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그냥 쉽게 받았던 사랑인줄 알았는데 우리가 자식한테 주자하니 힘겹기도 하고 다시 부모를 생각하면서 자식을 바라보게 된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