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본지 대표이사

지금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있지만 짚으로 만든 둥글거나 네모난 멍석이 있었다.
요즘처럼 한 여름에는 저녁을 먹고 나서 뜰이나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한참 구수한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멍석은 곡식을 널 때도 쓰였지만 잔치 때나  상을 당 했을 때 혹은 큰 행사를 할 때 마당에 깔아 놓고 많은 사람이 앉았던 생활도구였다.

명절에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서 멍석위에서 윷가락을 던지며 윷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멍석을 짚으로 만들던 기억은 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무엇을 제대로 하는 일이 곧 멍석을 편다는 뜻도 된다하니 이 여름에는 멍석이 정겹게 또오른다.

달이 휘영청 떠올랐을 때 옥수수를 먹으며 모깃불을 피워놓고 좋은 사람들끼리 정겨운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저녁마당 분위기를 느끼던 기억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그러한 정서 속에서 요즘 같은 우울함이나 질투, 그리고 열등감 같은 것은 그런 시절에는 끼어들 수가 없었다.

외로움은 더더욱 없었다.
요즘 사람들은 참 외로워한다.

동문회나 동아리 같은 모임도 많고 유대도 강한데 사람사이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없어졌다.
이곳저곳 소속감은 많은데 기쁨을 나누고, 고민을 상의할 상대가 진정 가까이에 없는 것이다.

내게 있어 멍석을 편다는 뜻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인가 자연스러운 무엇인가가 슬그머니 만들어지고 풀어진다는 '창조'와 '해원'의 좋은 이미지로 저장되어있다.

만남의 장, 이웃들이 하나 둘씩 모여앉아 의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슬그머니 풀어지고 놓여나던 마음들!

TV가 없던 시절에는 연속극을 라디오에서 듣고는 했다. 아낙네들이 한 집으로 모여서 멍석을 깔고 연속극을 듣고 나면 저절로 좌담회가 펼쳐지며 깔깔대는 놀이터와 집단 상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멍석과 관련해 떠오르는 정서의 또 하나는  봉숭아 꽃물들이던 모습의 기억이다.

멍석에서 형제자매들이 둘러앉아 손톱에 빨갛게 봉숭아꽃물을 들이면서 나누던 이야기들. 재깔거리다 어찌 잠이 들기도 하고 자다보면 서늘해져 집안으로 슬며시 들어가던 기억, 실로 손가락에 동여매놓은 봉숭아꼭지는 자고나면 어디로 달아나기도 했다.

그런 즐거운 정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평화로운 그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실에서 어떤 고통스런 기억으로 괴로워하다가도 그 시절의 평화로운 그림 한 컷이 떠오르면 현실의 고통이 슬그머니 휘발되어 버리는 것의 신비함이여!

어떤 이는 양보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법 없이 살아가던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면 애 닳게 고생한 것들이 다 녹아져 버린다고 했다.
분명히 우리를 해원시켜주는 것이 있다.

모진 마음이 들다가도 슬그머니 양보하게 만드는 어떤 위대한 힘! 그것은 어쩌면 문명의 아스팔트의 차가움이 아닌 흙길의 따뜻함이 아닐는지.

어린 시절 시골서 자연의 이치를 배운 사람들은 자연만 보고 자랐어도 성공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적응도 잘하며 출세하고 잘 산다.
무엇이든지 자연스러운 것이 그립고 좋은 것은 그만큼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의 본질이어서가 아닐까!
꾸며서 하는 모양들은 오래잖아 실증이 난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어우러졌던 일들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자양분이 되어 어렵고 힘든 고개를 같이 넘어가 준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위대한 자연과 사람과의 조화 속 에서 온다.
많은 이들이 힘들면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이치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척박함은 땅의 냄새를 잊어서이고 '땅과 하늘의 향기'에서 멀어져서이다.
많은 것을 알면서 행복해할 수도 있지만 정말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전공해야 할 것들은 아주 세밀한 자연과 소통하면서 얻는 경험일 것이다.

검은 하늘의 아름다움과 별과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탐욕 없는 멍석 한 장과의 조화로움을 잊지 않을 일이다.

알고 보면 다 놓고 가는 일이거늘 늘 그곳만 바라보다가 오랜 벗이며 우리의 초점인 본질을 잊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슬픈 일이다.

살다보면 모든 아쉬움도 자만도 있을 수 있지만 즐거운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좌절을 했건, 환호를 했건 우리의 인생은 한 장 한 장 모여가고 있다.

여름 밤 누군가와 멍석을 펴고 우리의 인생을 구수하게 이야기 하고 싶은지. 정겹게 떠오르는 그 뉘가 있으신지.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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