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아버지는 늘 누군가 우리 집에 오셨다 가는 손님에게 대문까지 나가서 인사를 하도록 하셨다. 어릴 때 때로는 그것이 귀찮은 마음이 되기도 했었지만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까닭인지 인사를 하는데 아직까지 인색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서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몹시도 어색하다.

외면하고 지나가야 할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참 쉽지는 않겠지만 마음에 무거운 짐과 고뇌를 주었던 사람조차 일단 인사를 하고 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환기되는 것이 신기하다. 어린 아이를 만나든지, 어른을 만나든지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대접하고 대접받는 일이 아닐까?

어릴 때 인사를 하던 습관은 단지 인사를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관문을 먼저 열어놓게 만들어준 것 이라고 믿는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하고 우울함을 벗어나고 소리쳐야 한다. 내가 먼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도 반기고 자연도 반기고 생기를 주고 받아야 한다.

때로는 혼자 거울을 보고 웃으면서 스스로 말한다. “안녕, 이 세상에 살아 있어주어서 고맙다”

스스로를 장하게 여기면서 대접하는 마음으로  혼자 말하고 나면 거울 속의 “또 하나의 나“가 좋아하는 것 같다. 나에게든 남에게든 내가 할 도리를 다하면 그 이후는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어떠어떠 하지는 않을까 상상할 필요조차 없다.

‘내가 누군데, 얼굴을 알면서 어찌 인사도 안하고 지나가나? 나를 무시하는가보다’고 생각하면 노기를 가질 필요도 없다. 알고 보면 사실 우리 누구나 별 사람은 아니다.

위, 아래, 옆의 수준을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것은 그 사람의 각본이고 그 사람이 쓴 안경이다.

궁금하면 내가 먼저 연결해서 그 사람을 부르라. 먼저 마음을 내 놓을수록 편해지고 손을 먼저 내밀수록 대접받는 거다. 권위적이면 권위적일수록 세상과 이웃과 멀어진다.

어른이라고, 부모라고, 선배라고 기다리며 괘씸해할 시간이 아깝다.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이미 여든이 다되신 연세이지만 100세 노인을 찾아 인사를 다녀오고 18살 밖에 되지 않는 우리 아들과 인터넷으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젊게 사신다.

아들 녀석이 먼저 연락하는 일이 게을러도 반드시 먼저 손 내밀어 마음을 열게 하시는 것이 그분이 가진 능력이시다. 본인의 연세가 얼마라는 생물학적인 셈을 접으신 만큼 그렇게 자유함을 구가하시는 것이 눈에 보인다.

보고 싶으면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연락하는데 주저하지 말 일이다. 기다리지 말고. 걸레질을 하다가도 생각나면 즉시 벌떡 일어나 연락하고 인사하라. 그리고 찾아갔다가 못 만나도 서러워 말라. 갔다가 오는 것이 안가고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다 낫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보고 싶다“고. 아무런 미련도, 무거움도 먼지조차도 자신을 누르지 못하게 할 일이다.

유인봉  dk@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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