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르고 그 옆을 지나노라면 바닐라향이 코 끝에 닿아 마냥 좋다고 느꼈던 계수나무잎이 어느 사이 노오랗게 변했다. 무심했던 느낌이 쌀쌀한 가을 아침 확실히 눈 안으로 쏙 들어왔다. 갑자기 기온이 변하면서 조석으로는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을 느낀다.

남이 뭐라든 내 온도에 맞추어 내복을 꺼내 입었다. 남이 방한을 필요로 하지 않을지라도  차가움의 기온 속에 무방비로 있기엔 몸이 힘들어하니 가장 먼저 내복을 입고 남보다 가장 먼저 내복을 벗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습관이다.

 가을이 떨구어 놓은 낙엽을 밟노라면 바스락바스락, 정말로 쓸쓸함이 묻어난다. 마치 얼음물에 손을 담갔을 때 오는 차갑고 시린 느낌처럼. 아니면 쓸쓸함이 차가운 기운을 몰고 뱃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가을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은 시간이 갈수 록 더하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가을이 그렇게 절절하고 가깝게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은 점점 나이가 든다는 거다. 너도 나이 들어 봐라”는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내가 모르는 지경을 이미 넘어서서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 오늘 누군가와의 통화중에 “계수나무 잎새”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 왈 “가을이 한 두 번 오나?” 해서 “어 그래!” 하며 한 바탕 웃었다.

“낙엽지면 다시 또 봄에 새순이 돋겠지. 그게 순리 아니겠어?” 갑자기 나의 느낌을 다 깨어주는 기분이기도 하고 여린 가슴 없이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 사람 모습 같았다.

가을은 똑같이 왔는데 그가 만난 가을과 내가 만난 가을은 다르다.어쩜 그리도 다른 가을의 모습이라니. 가을이라 하면 대부분 쓸쓸함과 우수를 연상할 수 있건만 그에게는 다시 봄의 새순이 나올 전단계로서의 과정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는 다르고 획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강요할 수도 없다.

“늘 와서 그렇고 그런 가을이 또 온다”고 믿는 사람에게 가을은 그렇게 온다. 하지만 또 가을이 오면 그렇게 가슴앓이가 찾아온다는 사람은 또 그렇게 가을을 맞이하고 보낸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계절도, 사람도, 믿는 만큼 경험하게 된다.

“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라고 단정하고 바라보는 틀 안에서 그 사람은 늘 그렇다. 사람에게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분명히 있다. 또 보여줄 수 있는 세계와 보여줄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같은 자리에서 둘이 같은 사물을 보아도 그 사람만이 보고 느끼는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믿는 만큼, 그리고 경험하는 만큼이다. 이 가을 느끼는 그 무엇에 관한 경험의 세계는  차곡하게 자신만의 사진첩에 그대로 새겨 둘 일이다.

결코 피자조각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객관을 기대하지는 말라.

유인봉  dk@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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