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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낫질!
   
▲ 유인봉 대표이사

아버지가 평생하시던 낫질은 흉내도 못 내겠지만 저녁무렵에 나름대로 꽤 한 것 같다. 아버지가 평생 농부로 사실 땐 기계화는 웬 말, 그토록 많이도 해야 했던 낫질이다. 풀이나 나무 곡식 등을 베는데 사용하는 농기구였던 ‘낫’은 아버지 시대의 것처럼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낫질을 해 봤다.

오리걸음으로 발을 떼어 놓으면서 싹싹 풀을 베어나가다 보니 어둑어둑 해졌다. 이상하리만치 힘이 든 상황에 연실 땀 범벅이면서도 손길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생신날 즈음이면 여기 저기 물 댄 논에 모내기가 시작되는 철이었다. 하필이면 인연 중에 바로 그 다음날이 시아버지 생신이라 허겁지겁 친정을 스친 듯 다녀와 시댁의 부엌으로 달려와야 했다. 그렇게 모내기가 시작되고 농사철이 되면 논두렁 밭두렁은 풀이 잘도 자랐다.

평생 남의 일을 먼저하고 자신의 일은 뒤차지고 실속을 못 차린다고 어머니가 언짢아 하시던 그 아버지는 농사를 지어 신작로에 지게를 받쳐놓고 나누어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수수 장목 빗자루를 어렵사리 엮어서도 곱게 누구에게나 쉽게 주던 그 심성을 우리 집 형제들이 다 닮아서 그런가, 6남매가 특별나게 물질을 축척하고 사는 이 없이 그저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를 하고 살아간다.

아버지가 어느 날 나무를 베다가 낫에 심하게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며 들어오시던 날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까지 보았던 키 크고 엄한 아버지가 아니라 가슴이 두군두군 많이 걱정이 되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낫질이라는 것은 마음속 깊이 두려운 물건이나 일로 기억되고 저장된 채로 여러 세월이 갔다.

어제 어스름할 무렵, 무성하게 자라던 풀들을 보니 마치 집을 포위해 들어오는 것 같은 생각에 얼결에 낫을 들고 말았다. 한 줌 한 줌 풀을 베어나가다 보니 해보지도 않았던 낫질이 뒤돌아보니 산뜻한 정도로 속도가 났다.

‘어쩌면 두려움을 싹뚝 싹뚝 베어나간 건 아닐까?’

‘유전적인 것일까?’ 배운 바는 없지만 수없이 본 바는 있는 낫질이 한 호흡 한 호흡 익숙해져가며 늘 하던 사람처럼 쓱싹 쓱싹 풀이 베어졌다. 손은 풀을 베고 머릿속에서는 별의 별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했다.

어릴 적 과거와 고단한 현재와 알 수 없는 미래가 왔다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걸고 있다고 할까!

왜 고민만 했을까!

해마다 무성해지는 풀을 바라보면 걱정도 많았다.

늘 풀은 남편이나 아들이나 또는 그 외의 남성들이 풀베기를 하곤 해서 늘 해줄 시간을 기다렸었다. 겨우 한 줌씩 풀을 뽑는 정도만 해 온 것이 큰 성과도 없이 풀이 나는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나이가 무서운 걸까! 환갑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자신을 넘어선다. 무엇을 해보기에 망설임이 없다. 누구나 그 나이쯤 되면 경험치가 무시할 정도는 아닐 거다. 안 해본 일이라도 늘 해본 듯이 달려들 수 있는 용기가 생기나보다.

아무튼 낫을 들고 한줌 한줌 베어나가니 시작이 반이 되었다. 하다보니 마음의 힘이 생긴다. 세상 모든 자신감은 해보면서 이렇게 생기는 걸까?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이 없다지만, 낫질로 가슴 속이 시원해지는 청량감이 만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을 움직이는 일을 많이 하라고 했던가!

땀흘리는 노동의 작은 쾌감이 왔다. 궂은 일 안가리고 손가락이 아프고 저리도록 일하며 살아내셨던 부모님들의 세월, 가족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부모의 기운이 여기까지 지켜주고 계신다. 낫 들고 풀 베는 일 하나가 다시 살 맛을 준다. 때가 되면 베어버려야 산다.

베어낸 풀을 닭장가득 넣어주니 닭씨들이 반기듯이 쪼아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 암탉이 알을 품더니 드디어 세 마리 삐약 병아리가 나왔음을 확인했다. 어느새 어미따라 졸졸 거리며 풀속을 따라다니고 있다. 어쩌다 풀은 베었고 병아리가 나와 식구가 늘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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