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벌써 24년이 흘렀다.

1980년 5월 당시 세상에 대하여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면죄부를 지녔던 어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24년의 세월동안 동요와 동화 속 작은 세상에 안주하다가 어느새 서른 셋의 평범한 청년이 되었다.

그동안 5월 18일이라는 세상에 수없이 존재했던 그 날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뜨겁게 달구게 될 때까지도 그저 살아가는 일, 주어지는 과정 속에서만 만족을 찾았던 평범하지 말았어야 할 평범함으로 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살고자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선생님이 된 나는 그것도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는 존재로서 동화 속에서도 있어서는 안될 이 땅의 아픔을 너무도 가벼이 넘긴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만날수록 마음 속에 살며시 피어나는 나를 향한 질문이 더욱 구체화되어 아이들 앞에 섰을 때 이제 1980년 광주는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동화 속 세상을 벗어나 세상을 본래의 진실 됨으로 돌아가게 해 놓아야 할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2004년 5월, 아이들과 나는 이제 두 번째 맞이하는 청소년 민주주의 캠프의 참가자가 되어 광주를 찾았다.

전세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는 것이지만 단순히 광주로 가는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24년 전 광주로 이동하는 시공을 초월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 초월된 시공 속에서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생각들을 거슬러 오르게 되길 기도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아픔의 역사로 향하는 마음을 아는 탓일까?

살며시 적셔주는 빗줄기 속에 광주 망월동에 도착해서 1980년 5월 광주의 사진부터 망월동 묘역에 묻힌 영령까지 돌아보며 아이들은 책 속에서 존재했던, 그저 ‘민주화를 위한 민중의 투쟁‘이라는 열 글자를 넘어 그 이상의 느낌을 느끼는 듯 했다.

1980년 5월의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질문을 해오는 모습이나 또 참혹한 사진을 접했을 때 눈을 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법 가슴이 뿌듯해짐이 느껴진다.

왠지 사람이 싸우고 죽이고 하는 지금의 영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5월의 역사가 한낱 영화처럼 느껴져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아닐까 하는 나의 오만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순간 덜어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역사를 통해 성숙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느끼고 또 인간의 내면에 있는 ’선함‘과 ’사랑‘에 대한 보편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하지만 분노와 진실한 인간사회에 대한 열정으로 각인되었던 ’나의 5.18정신‘이 ’아이들이 느끼는 5.18정신‘과 같을까? 아니 같아야만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은 다시 내 마음 속에 남는다.

다양함에 익숙해지고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의 동화 속에서 살아왔던 아이들에게 1980년의 광주는 이들의 삶에서 과연 무엇을 창조해야하는가? 나와 다르더라도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이 느끼는 새로운 5.18의 정신은 무엇일까?

나는 아이들에게 1980년의 광주를 알려주려고 노력했지만 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5.18 정신에 대한 단상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새롭게 달구어지고 또 새로운 구체성으로 변화되어 계승될 아이들의 5.18 정신에 대해서 나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로 했다.

'빠름'만이 속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느림'이 주는 '깊이'를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04년의 광주는 나에게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하는 것과 5.18 정신이 다음 세대에게도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작용하리라는 신념을 배움으로 주었다.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주는 세상을 꿈꾸며 아이들에게 이번 광주의 작은 요동은 큰 출발이 되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을 넘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세상과 함께 단련하는 작은 ‘5.18 정신’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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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길 교사는 대안학교인 산마을고교 교사로 역사과목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지난 5월16~17일 양일간 광주묘역을 찾아 현장교육을 하고 본지에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사진)16일 산마을고교 학생들과 함께 5·18기념재단과 한겨레신문, 광주문화방송이 마련하는 ‘제4회 5·18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최보길 교사  make-ho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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