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못하고’는 노래 잘 ‘부르는 것’과 상관없어
가창력보다 자신감, 자신 목소리가 가장 좋은 악기

음악의 힘은 무궁무진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자꾸 말을 하고 노래를 해야 몸에 새로운 공기가 들어가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 허현성(43)강사의 믿음이다. 경기도를 두루 다니며 노래교실을 강의해온 그가 김포와 인연을 맺은 지는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김포농협 사우지점 2층을 100여명 가량의 수강생으로 가득 채우며 힘찬 에너지를 걸쭉한 목소리로 뽑아내는 그는 “조상님이 튼튼한 성대를 주셔서 다행”이라며 껄껄 웃는다.

“저는 노래하게 되면 한 시간 반 동안 입을 한 번도 쉬질 않는 것 같아요. 노래교실을 시작하면 한 30분 줄기차게 노래 부르다가 숨이 좀 찰만 할 때면 인사말을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 주 동안 다들 강녕하셨습니까, 편안하셨습니까. 그러고 나면 이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 주에 있었던 일이라든가. 사회적이거나 시사적인 이야기라든갚

딱딱한 것은 재미없다며 한 두어마디 유머도 섞고, 박수도 쳐가며, 그렇게 진행하다보면 노래도 노래지만 중간에 이야기 안 해주면 섭섭해 하며 왜 오늘은 이야기 안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노래도 노래지만 어머님들이 아실 수 있는 건강 상식이라든가, 노년을 활기차게 지내는 방법 같은 것들을 노래와 웃음을 통해서 전달해 드리는 거죠. 요즘 나이가 계신 분들은 정보와 접촉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특히나 저와 함께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어머님들이세요. 지금이야 40대 후반까지 연령대가 많이 내려 간 편이지만 60, 70 되신 분들도 많으시죠. 그러다 보니 어머님들이 뭘 그렇게 주시고 싶어 하세요. 아들 같다고들 그러시고. 옷을 하나 마련해 오셔서는 ‘선생님 거기에 받쳐 입으면 예쁠 거 같아요’ 그러면서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늘 감사하죠. 어머니들하고 함께하는 게 굉장히 즐거워요”

자기보다 연세가 있는 분들과 함께 하다 보니 허 강사는 실버세대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세대의 안타까움을 느끼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음악치료사라든가 노인요양보호사, 뮤직 테라피 같은 실버 세대를 위한 길도 많이 권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게 그나마 어머니 노래교실은 좀 있는데, 아버님들을 위한 교실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쌍하신 세대들이 아버님 세대들인데, 보다보면 정말 안쓰러워요. 6.25나 산업사회 같은 것들을 그대로 통과해서 오시느라 제대로 노시거나 자기 건강을 추스를 여유도 없이 사셨던 분들이시잖아요. 여성분들 같은 경우는 서로 삼삼오오 손잡고 오시는 경우도 있는데, 남자분들 같은 경우는 주변에 동기부여가 되시는 분들이 안 계시면 아무래도 오시기가 어렵거든요. 인생을 좀 더 즐겁게 사는 방법을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 오셔서 여러 사람들도 만나시고 친구도 사귀시며 같이 정을 쌓으시면 좋으실 텐데. 그래도 가끔 몇몇 분 오시는 편이세요. 육십 칠십을 넘기신 분들이시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녀요” 

그들 중에는 너무 우울해 보이던 사람들도, 음악교실을 다니고 나서부터는 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즐거워하고 좋아한단다. 집에서 앉아만 있지 않고 나와서 활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허 강사의 모토다. 가끔 노래를 잘 못한다며 수줍어하시는 어머니들에게 그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노래를 ‘부르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입니다. 장인들이 만든 악기든 그렇지 않은 악기든, 그 악기 특유의 깊은 소리가 있는 법입니다. 그 각자의 소리를 잘 개발하면 되는 것이지, 누구 목소리가 예쁘고 멋져 보인다고 자기의 소리를 외면한 채 그것을 따라가려다 보면 그야말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꼴입니다. 결코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뱁새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목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입니다”

사람들의 목소리에 인생이 다 있다. 성공적인 인생과 삶은 사진첩에 잘 보관되어 있지만, 힘든 인생과 사랑들은 사람들이 부르는 유행가 가사 속에 다 들어가 있는 법이다. 노래를 부르다보면 저게 바로 내 이야기구나, 이 노래가 바로 내 노래구나 하는 심정이 들어, 허 강사도 수강생들도 마음이 함께 찌르르 해지는 경험도 했단다.

“저는 어머니들에게 집에서 나오실 때 거울을 보고 나오시냐고 묻습니다. 그럼 거의 다 보신다고 대답하세요. 그럼 저는 또 물어봐요. 그래, 거울이 뭐라든가요? ‘아무 소리 안 하던데요’ 라는 대답이 또 들려오죠. 맞습니다. 그 거울은요, 본인들이 웃기 전에는 절대 안 웃어요. 그냥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이 아니란 말이죠. 당신들이 웃어주면 환하게 화답하는 집안의 일원이에요. 수강생들에게 항상 강조해요. 집에서 나오실 때 한 번씩 웃어주시라고. 집 잘 지키고 있어~, 나 다녀올게~, 나 오늘 열심히 하고 올게~ 하면서. 그리고 다녀와서 또 거울을 보며 인사해주는 거죠. 나 무사히 다녀왔어~, 오늘도 재미있었어~, 그럼 거울이 똑같이 반갑게 맞아줄 거에요. 거울은 먼저 웃는 법이 없어요. 내가 웃기 전까지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귀천이 무슨 상관이랴. 배꼽 아래 힘주고 노래 부르며, 온갖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구수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강의 시간 동안 수강생들은 허 강사의 철학과 함께 소리로써 대화하게 된다. 김포의 또 다른 아름다운 소통이다.

김희선 기자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