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직접 쓴 붓글씨로 지인들에 새해 인사
“욕심 덜 부리면 덜 늙고, 마음도 훨씬 편해”

“경북 안동의 가일마을이야. 내 고향이지. 사람이 고향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나라도 없는 것 같아. 여우도 머리를 고향쪽에 두고 죽는다고 해서 ‘수구초심’이라잖아” 

고향마을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는 권재국 사장의 말이다. 70대 후반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의 권 사장에게서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사업체 이름을 지을 때도 일부러 고향의 다른 이름을 따서 ‘영가(永嘉)’라고 지었다고 한다.

김포에는 89년도에 처음 왔고, 이후 95년도에 이곳 대곶에 자리잡은 이후 알루미늄과 코일, 판을 생산하고 있다.

“어려운 때도 있었지. 그래도 공장을 늘리겠다던가, 그런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그저 용돈벌이 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해왔어. 돈이나 말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제품 자체로 승부하니까, 그래도 큰 고비 없이 여기까지 온 것 같아”  

모든 기업들이 맥 못 추고 너나할 것 없이 무너졌던 IMF 당시에도 권 사장의 사업체는 오히려 수출의 강세로 좋은 실적을 내어 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심화된 원가경쟁 등으로 요즘에는 예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마주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꿋꿋이 운영해온 덕택에 지금은 셋째 아들 권종순 씨가 전국으로 뛰면서 아버지 사업의 대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 김포에 왔을 때는 조금 배타적이 면이 없잖아 있었어. 하지만 원체 남과 시비를 잘 가리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또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았지. 그러니까 편해지더라고. 자기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에 대한 집착을 놓기 시작하니까, 모든 것이 편해지는 거야. 이웃들과 서로 그렇게 놓으면서 알아가게 됐지. 맘 비우면서 산다는 게 어려워 보일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

매 해 설이 돌아올 때마다 권 사장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보낼 연하장을 하나하나 손수 작성한다. 장장 15년간, 붓글씨로 차분히 새겨진 연하장은, 주변에서 쉽게 사서 보낼 수 있는 프린트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라고 권 사장의 지인은 말한다. 받은 연하장을 꼬박꼬박 소중히 보관하는 지인도 생겼다.

“젊었을 때 시행착오 겪는 건 당연하지. 나도 예전에는 다방면에 욕심이 있어서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는 모두 내려놨어. 살아가는 데 갈등이나 욕심을 덜 부리면 덜 늙고, 마음도 훨씬 편해. 현실에 맞춰 가면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충실히 사는 거지”

불교의 수행법 중에 ‘위빠사나’라는 명상법은 ‘내려놓음’을 중요한 과정으로 강조하고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천천히 내려놓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한 발짝 ‘내려놓은’ 권 사장의 소탈한 품성은, 모두가 각자 뭔가를 움켜쥐고 바쁘게 뛰어가는 현대 사회에 소중한 쉼표가 되어 주고 있다.

김희선 기자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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