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600리 길을 걸으며’는 사단법인 지역문화전략연구원 대표 정현채님이 지난 7월29일부터 8월7일까지 안양-의왕-수원-평택-천안-차령고개-공주-부여-강경-함열-익산-부안까지 홀로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을 기록한 글로 8회 분량으로 연재한다.
필자는 본지 필진으로 통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난 2005년부터 4년간에 걸쳐 총 90회 분량의 ‘정현채의 문화읽기’를 통해 지역 안팎을 넘나드는 문화길라잡이로 역할을 해왔다.

▲ 김포 길. 그림｜우암 신동호

가시밭길도 걷는 사람이 있어야 가시가 무디어지고 다음에 걷는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 만큼 길을 개척(開拓)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따른다. 우리민족이 하나되는 길을 만들고자 염원했던 백범 김구선생이 3.8선을 넘으며 읊었던 시가 있다. “답설야중거(踏雪夜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이다. 서산대사의 시다.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뒤에 오는 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니” 민족의 운명을 고뇌하며 남북협상에 임하는 김구선생의 뜻이 베인 시다.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개인의 길이거나 우리민족이 가야할 길이거나 아니면 땅의 길이든 물길이든 마찬가지다. 길을 잘못 내거나 틀어 버리면 두고두고 고통의 씨앗이 되거나 갈등하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의 생성목적이 이득을 셈하는 길이 된다면 자칫 주변 환경이 훼손 되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문명의 도구가 발달할수록 길도 변화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자동차 길을 만드는데 치중하고 사람이 걸어가는 길을 다듬는 것에는 소홀했다. 지역에서 지역을 이동하는 빠른 길이 우선 이었고 이야기가 있는 길을 다듬는 것은 등한시 했다. 그러나 지금 전국은 걷기 코스를 만들고 있으며,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중이다. 제주도 “올레 길”은 이미 벤치마킹 대상이 된지 오래고 도(道)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거나 시(市)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강화도 “둘레 길”과 지리산 “둘레 길”을 비롯하여 전라북도의 “에움길” 등이 그렇다.

이번에 국도를 걸어가면서 각 지역의 인도를 보았다. 인도는 지역마다 비슷한 곳도 있었고 다른 곳도 있었다. 어느 도시에서는 자동차나 동력기구가 아예 인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음 장치를 박아 놓고, 바닥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우레탄고무를 깔아 놓은 곳도 있었다. 사람을 보호하고 걷기 편하도록 만든 경우다, 어느 도시는 표지판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위치를 표시해 놓아 보행자를 위한 세심한 도시계획이 돋보였다. 그 중에서 인도를 숲속처럼 가꾸어 놓은 곳이 걷기에 가장 좋았으며 인상적이었다.

길을 걸으며 김포의 길을 생각했다. 10년 전에 월곶면 용강리에서 보구곶리로 돌아 나오는 민통선 걷기를 계획하여 수백 명의 가족들이 참여한 적이 있었다.(이 길을 필자는 문수산 용(龍) 둘레 길이라 부른다) 그때 걷기와 이야기의 중요성을 알았다. 그리고 600리 길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김포 길을 걸어 다녔다. 하천과 농수로와 들판 길은 모내기와 벼 베기 철과 잉어의 산란철과 철새가 오고 가는 시기에 따라서 다르다. 황오리가 군집을 이룬 겨울 들판은 가을의 황금들판을 바꾸어 놓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했다.

1월 1일 해맞이를 대신해서 홍도평에서 가족과 함께 재두루미를 보았던 광경을 아이들이 지금도 이야기를 한다. 하천을 따라 수수 밭 길을 걷고 포내천 들판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벼 꼭지를 밟으며 메뚜기를 잡았다. 이것이 사계절에 따른 김포의 생명력이고 다른 지역과는 다른 색깔을 갖고 있는 자원이다. 사실 이런 것을 알게 된 것은 김포 길에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김포를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제 작은 경험을 내면으로 성찰하면서 김포 밖에서 김포를 본 몇 가지 이야기를 풀면서 글을 맺는다. 하나는 김포 사람이라면 삼한적의 강이라 불리는 조강을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경인운하에 올인 하는 서울의 한강 정책에서 김포는 조강을 활용하는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서울의 르네상스는 서울 중심의 계획에 불과하다. 김포는 한강하구를 중심으로 북한과 연계한 계획을 수립하고 주변 도시와 연결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하나는 군사지역, 특히 민통선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김포(金浦)의 지명에서 확실하게 보여 주듯이 김포의 생명력은 땅(地)과 물(浦)이다. 땅과 물을 보존하면서 활용해야한다. 마지막으로 김포다운 도시는 수백 년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온 문화가 씨앗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야 김포다운 도시가 된다. 보이는 것은 다른 도시와 다를 바 없고 그것을 채우는 알맹이 또한 다른 도시 것으로 채운다면 정신은 내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에 살고 있는 꼴이 된다. 김포 밖에서 김포를 찾지 말고 김포에서 김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제문화와 복제도시는 매력이 없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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