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600리 길을 걸으며’는 사단법인 지역문화전략연구원 대표
정현채님이 지난 7월29일부터 8월7일까지 안양-의왕-수원-평택-천안-차령고개-공주-부여-강경-함열-익산-부안까지 홀로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을
기록한 글로 8회 분량으로 연재한다.
필자는 본지 필진으로 통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난 2005년부터 4년간에 걸쳐 총 90회
분량의 ‘정현채의 문화읽기’를 통해 지역 안팎을 넘나드는 문화길라잡이로 역할을 해왔다.
천안시내에서 출발하여 조치원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걷기를 시작한지 4일째다. 더위와 아스팔트길은 스쳐가는 자동차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체력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한마디로 걷기에는 악조건이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걷고 걸어도 차령고개는 저 만큼 끝자락만 보인다. 국도를 벗어나 산자락에 펼쳐진 마을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한발을 옮기기도 힘들다. 여름방학 중 열흘간 시간을 내어서 걷는 만큼 무한정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06시 30분에 출발하여 4시간 동안 걸으면서 더위와 자동차 소리에 지친 몸으로 국도로 계속 가기에는 무리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교적 조용한 길로 가기로 했다.
처음 가는 길이라 국도와 연결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가보면 알겠지만, 고가도로 밑으로 우회하는 소로를 택하여 국도 옆에 있는 연기군 소정면에 도착했다. 도로에는 “세종시 특별법 조기제정촉구. 정부기관이전 변경고시이행”이라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소정리 보건지소 쉼터에 배낭을 내리고 양말과 수건, 모자를 벗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아무도 없다.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날씨는 무덥지만 쉼터의 그늘은 더할 나위없다. 개미도 올라오지 못하는 의자가 있고, 물병에는 미지근하지만 물도 남아있다. 눕자 누워! 길고 긴 국도를 걸어오면서 피곤함이 내린다. 국도에서 몇 시간을 차량의 질주 소리와 아스팔트 빛에 시달린 탓인지 시골의 조용한 정취가 찬물로 샤워를 한 느낌이다.
“천금지석산위침(天衾地席山爲枕) 월촉운병해작준(月燭雲屛海酌樽) 대취거연잉기무(大醉居然仍起舞) 각혐장수괘곤륜(却嫌長袖掛崑崙)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네.” 조선 명종 시대에 진묵대사가 남긴 게송이다. 진묵대사의 한쪽 도포자락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천지공간에 몸을 뉘이니 더 이상 취하고 싶은 것이 없다. 날씨가 뜨거워 다니는 사람도 없고 간간히 지나가는 승용차 소리만 들린다.
소정리 마을길을 돌아서 차령고개 가는 국도로 들어섰다. 도로를 따라 걷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산 쪽 도로변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삼일 동안은 길 떠나기 전에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살았던 일들이 괴롭힌다. 고구마 줄기마냥 하나를 잊으면 다시 하나가 튀어나온다. 질기고 질기다. 좋은 일보다 좋지 않은 일들이 떠오르니 마음은 괴롭고 힘은 몇 배로 든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때도 있다.
차량들은 많지 않아 걷기는 좋으나 벌레들이 달려든다. 그렇게 걸으면서 오후 늦게 공(功)자가 떠올랐다. 공(工)의 뜻을 모르고 힘만(力)쓴 꼴이 되었다는 생각에 미쳤다. 공덕(功德)의 功으로 생각하고 애만 쓴 꼴이 내 모습이라 생각하니 욕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자문자답을 한다. 功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工자를 바로 알고 修身(수신)을 해야 한다. 여기서 5월에 받았던 자아공덕(自我功德) 가족공덕(家族功德) 만인공덕(萬人功德) 천상공덕(天上功德)의 글귀가 하나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자아공덕(自我功德)은 수신(修身)이요 가족공덕(家族功德)은 제가(齊家)요 만인공덕(萬人功德)은 치국(治國)이요 천상공덕(天上功德)은 평천하(平天下)로 풀어진다. 나중에는 삼일신고(三一神誥 )의 “止感調息禁觸 一意化行(지감조식금촉일의화행)”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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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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