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일주일 분량의 짐을 꾸린 배낭을 짊어지고 막내딸의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섰다. 하루 가는 거리와 쉬는 시간은 1시간에 4㎞에서 5㎞를 걷고 10분에서 20분 정도 쉬기를 반복했다. 그것도 몸 상태를 보면서 조절했다. 많이 걷고 빠르게 걷자고 나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체 일정은 꽉 짜인 것보다는 느슨한 것이 좋다. 땀은 쉼 없이 흘리되 천지(天地) 공간에서 마주치는 사물과 교감을 나누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가는 길은 그래서 좋다. 그리고 길을 가다보면 무엇인가를 만나게 된다. 우연이든 아니든, 사람이든 식물이든 만나게 된다. 만나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눈을 감고 걸으면 그 때는 소리로 만나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걷기 때문이고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대략 30㎞에서 40㎞ 정도 길을 가다보니 인도가 있는 곳에서는 사람이 스쳐가고 차도에서는 자동차가 스쳐간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뿐이다. 

길을 가다보면 어느 때는 잘 만들어진 인도를 걸어가는 혜택을 누리고, 어느 때는 한적한 하천 둑을 걸어가는 자연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인도도 없고 하천의 둑길도 없는 차도를 만나면 매연과 자동차 달리는 소리와 위험에 노출된 몸이 적응이 되지 않아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을 만나는 경우다. 하천과 철도를 넘어가는 고가도로와 길과 길을 넘어가는 다리의 위와 아래는 걸어서 넘어 갈 수 있는 표시가 없어서 5분이면 갈 곳을 30분을 돌아서 가기도 한다.

7월 30일 아침에는 수원 중심을 지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도로변 보다 골목길을 택해서 걸었다. 아침 골목길은 사람 살아가는 풍경이 살갑게 다가온다. 작은 식당에는 일꾼들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기웃거리다 김밥 두 줄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 틈으로 하늘하늘 걸어가다 수원역을 지나 세류역에서 80대의 할아버지를 만났다. 국도를 걸어서 간다고 하니 버스를 타고 가라고 극구만류를 한다. “젊어서 몸 험하게 쓰지 마라,” 늙어서 고생한다는 말씀과 당신은 왜정시대에 담배와 술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지금까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지만 건강만큼은 남 못지않다는 것과 결혼 3개월 만에 6,25가 나서 전쟁에 나갔던 이야기들을 들었다.

“젊어서 몸을 험하게 쓰지 말라”는 말씀이 “젊어서부터 정신을 험하게 쓰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내면의 소리다. 아스팔트에서 반사되는 빛과 지열은 푹푹 찐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 간단하지만, 걷기로 한만큼 10㎏의 배낭을 짊어지고 계속 걸었다. 배낭의 무게가 가중이 되면서 양쪽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것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다리까지 불편하게 한다. 오산 가는 길에 물을 준비하지 않아 화성 국도변까지 1시간을 넘게 걸어가면서 갈증으로 혼쭐이 났다. 중간에 가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원인이다.

오산 들어가기 전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적한 곳에 짐을 풀고 햇빛에 젖은 옷가지를 말리면서 배낭에서 복사한 종이를 꺼냈다. 장 닭이 물 한 모금 머물고 하늘 보기를 반복하면서 물을 먹듯이 글 한줄 읽고 생각하면서 두 시간 동안 놀았다. 복사한 내용은「스승의길 주역의 길. 대산 김석진 지음」에 나오는 글로 대략 다음과 같다. “남을 유익하게 해주는 사람의 조건은 첫째는 양심이요 둘째는 건강이요 셋째는 능력이다. 양심이 없으면 남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남에게 폐를 끼치며, 능력이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양심을 찾는 것이다.(중략)”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지는 못할망정 해가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자신의 몸과 정신을 험하게 쓰지 않아야 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더라도 독선의 잡생각으로 남의 일에 훼방을 놓거나 시기하고 질투하는 험한 정신부터 쓰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조차 잘 안된다면 선조들이 내어준 길을 따라 가기만 해도 커다란 배움이다.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엮여서 생각할 것 없다.

지금 내 앞의 길을 가고 가다보면 나중에는 집을 찾아가듯이 몸과 정신은 본성으로 찾아간다. 단 인간 본연의 양심을 근본으로 하는 노력이 있을 때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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