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600리 길을 걸으며’는 사단법인 지역문화전략연구원 대표 정현채님이 지난 7월29일부터 8월7일까지 안양-의왕-수원-평택-천안-차령고개-공주-부여-강경-함열-익산-부안까지 홀로 길을 걸으며 느낀 것을 기록한 글로 8회 분량으로 연재한다.
필자는 본지 필진으로 통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난 2005년부터 4년간에 걸쳐 총 90회 분량의 ‘정현채의 문화읽기’를 통해 지역 안팎을 넘나드는 문화길라잡이로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단」의 주인공 봉우 권태훈(1900∼1994) 선인(仙人)의 좌우명이 “去去去中知(거거거중지) 行行行裏覺(행행행리각)”이라 한다. 가고 가다보면 알게 되고, 다니고 행동하는 와중에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움직임이다. 걷는 다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며 걸음에 따라 마음의 움직임도 다르게 나타난다.

 

자동차 길을 가다보면 소음과 위험 때문에 마음이 안정이 되지 못하고, 하천 길을 따라가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본성으로 다가감을 느낄 수 있다. 자연에 가까울수록 마음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나며 환경의 중요함을 직감하게 된다. 걷기에서 배우는 외적인 요인에 따른 내적인 변화다.

걸으면서 배우는 것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행선(行禪)이다. 행선은 승려가 심신을 가다듬기 위해서 일정한 장소를 조용히 걷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화두(話頭)를 염두에 두고 걸으면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오체투지는 걷기와는 다르게 고행을 수반한다.

 

얼마 전에 수경스님과 문규현신부님을 비롯해서 김포 용화사의 지관 스님 및 많은 분들이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가 있었다. 심금(心琴)을 울리는 길이었다. 길을 가는 방법에는 홀로 수행을 하는 것과 여러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가는 것을 비롯하여 시대의 자각을 알리는 길이 있다. 동양과 서양에서 이미 알려진 몇 가지 길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본다.

먼저 “화가 치밀 때 타인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면 연민이 솟아나고, 연민은 분노의 불을 꺼버린다. 자각의 에너지를 키우면 몸과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 고 말한 틱낫한(베트남) 스님은 분노와 스트레스 해소에 걷기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그리스)가 리케이온의 숲속을 거닐며 제자들을 가르친 것에서 유래한 '소요학파'(逍遙學派)란 말도 걷기에서 나왔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긴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고 했던 루소(프랑스)도 걷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키에르케고르(덴마크)는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니체(독일)는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고 했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대사가 661년에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자다가 마신 것이 해골 물임을 알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것은 우연하게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먼 곳까지 길을 가면서 사물에서 받아들이고 나가는 마음이 수 없이 변화하는 수행의 연장선에서 얻었던 깨달음의 길이었을 것이다.

길을 떠나는 준비를 하면서 유명한 철학자나 종교의 수행 방법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거창한 사유의 세계를 넘나드는 정도도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 걷기는 집 주변을 한두 시간 산책을 하거나 가볍게 걸으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일 동안 장거리를 걷는 것이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조심스러웠다.

 

혼자서 처음 행(行)하는 것인 만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준비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그동안 김포를 장시간 걸어보면서 필요한 것을 준비 하고난 후에는 길을 가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골몰했다. 결국은 49년 동안 짊어지고 온 것 중에서 버려야 할 것과 지금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그 하나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나머지는 정성으로 길을 걷다 보면 알게 되고 깨닫게 될 것으로 믿었다. “去去去中知(거거거중지) 行行行裏覺(행행행리각)”처럼 말이다.

정현채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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