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이사

3월을 여는 봄눈이 2월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겨울이 다 가고 이제 산수유꽃이 곧 피리라고 기대하던 순간에 하얀 눈이 펑펑 엄청 내렸다.

지난 밤까지만 해도 이러저러한 세상 근심에 잠을 뒤척이고 아침에서야 더 정신 차리자고 희망을 동반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는데 점심 무렵 어린아이처럼 세상 모르게 기뻐했다.

단지 눈이 내린다는 이유가 그렇게 세상사 시름을 잊고 행복한 그림으로 이동시켜줄 줄이야!
눈이 내리면 솔직히 불편함이 많다. 눈 때문에 차로 이동하는데 더 조심하며 거북이걸음을 해야 하고 잘 안 녹고 얼어붙으면 큰일 인 것이 겨울눈이다.

하지만‘봄눈 녹듯이’라는 말이 있듯이 봄눈은 전혀 다르다, 언제 왔느냐 싶게 그렇게 살포시 녹아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부담없는 기쁨으로 눈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힘든 여정을 살면서 가야할 길은 멀고, 인생을 헤쳐 나가는데 필요한 능력과 그 외 모든 것은 셈을 한다고 해봤자 어림도 없는 사람들은 모든 순간, 어디서든지 또 하나 희망과 웃음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침 나절 조찬 모임에서 돌아가면서‘하하’소리를 내어 이어가며 웃음마라톤을 해 봤다.
처음에 멋쩍어 하던 이들이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

그러고 나니 모두들 웃음을 웃은 그 외는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아주 명랑해졌다.
솔직히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마다하지 않고 거듭할 수 있는 것도 힘이 있을 때이고 능력이 있을 때이다.
목소리를 높이고 싸울 수 있다는 것도 힘이 있을 때이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던 이들이 술을 못한다고 사양하는 것을 보면 건강을 염려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힘이 줄어든 것이다.

죽은 듯 숨결이 잘 안 느껴질 정도로 침잠해 들어가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오게 되어 있다.
요즘 같이 정치, 경제, 사회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일상을 묵묵하게 이어가는 이들이 우리 곁에 살고 있다는 것도 희망이고 위로이다.

평화와 전쟁의 고리를 잡고 있는 권력의 행동이 어디로 향할지 그 향방에 자주 조바심이 나면서도 이 땅에서 우리는 매일 지루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을 반복하며 성실하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이것도 대단한 것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마음에 가난끼가 가실 날이 없어도 그렇게 삶은 일상을 반복하며 낙오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멈추어 져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그렇게 대단한 행복이었음을 감동하며 느끼는 일들이 우리들의 소소한 생명력이자, 삶의 자산이다.

언젠가는 마당가에 나와서 그렇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볼 수 없는 시간도 있을 테니까.
아마도 가장 행복할 때는 연애하는 가슴이었던 그런 날이 아니었을까? 심장이 뛰고 볼이 발그레 해지며 하루 하루 시인으로 살았던 기억들이 있으리라!

하얀 눈이 내리는 날 발자욱을 하얀 길 위에 내면서 걸었던 추억은 없었을까?
없었다면 이제라도 마음의 하얀 봄 눈길 속에 자신과 스스로 연애하듯이 발자욱을 내 보아도 좋을 일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나머지 인생을 즐기며 살 일이다.

달빛 머금은 자신의 목소리와 눈빛에 스스로 마음을 주고 사랑할 일이다.
간혹 인생의 무게에 눌려 가슴이 답답한 순간이나 나의 진심을 백분의 일도 알아주지 않아 슬픈 날에도 스스로 자신을 쓰다듬으며 ‘삶이 우리를 속일 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시간과 그리움이야 말로 우리가 가난하게 한을 가지고 걸어온 길을 하얗게 씻고 닦아줄 수 있다.

오래 혹은 잠시라도 미웠던 마음도 증오도 한도 하얀 봄눈이 내린 길에 다 놓아버려도 좋으리라. 하얀 봄눈과 함께 다 녹여버리고 나면 또 새길과 새기운의 시작이다.

새봄은 세상에서 처음 만난 봄처럼 그렇게 우리 곁에 올 것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말고 우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감동을 놓치지 말 일이다. 사실 우리의 아름다운 감동이나 느낌은 남이 모르는 행복이다.

남이 나를 모를 수는 있지만 자신조차도 자신을 많이 알지 못하고 살다가는 것은 슬프다.
자신의 내면에서 그토록 갈구하고 원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하나 하나 다 풀어낼 일이다.

봄이 우리에게 당도하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친 것일까!
봄눈 한 장면으로도 보다 더 삶에 너그러워 질 수 있다.

감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의 이치와 벗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완성해 나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람이라는 생명으로 이 세상에서 사는 더 할 수 있는 축복과 오메가 이리라.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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