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이사

대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언니가 있었다. 은주언니라고.
그이는 누구에게도 의심없이 친절했다. 그야말로 얼굴에 ‘착함과 밝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같이 손잡고 다니면서 우리들의 영혼의 행복에 대해 자분자분 말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훗날 그 언니는 수녀님이 되어 함께 만난 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본인이 어디인가 외출을 하게 될 때는 행여 돌아오지 못하게 될 때 모든 짐을 누구에겐가 부칠 수 있도록 마무리를 해놓고서야 돌아올 코인 두 개를 가지고 있던 자리에서 떠난다고.

그날 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만 원 짜리 한 장을 자신은 쓸 데가 없다며 내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
평생을 살면서 그 만원은 내게 부메랑이 되어 착하게 살라고 이름없이 가르쳐준다.

어디를 가서도 꼭 표시를 내어야 하고 자신이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머물렀던 순간조차 소리 없이 깨끗이 닦아내는 이들이 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이렇게도 살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산 걸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점점 감사의 크기가 달라진다. 옛날에 쳐박아 두었던 것들도 꺼내서 써보면 훌륭한 것들도 있고 수술한 남편이 지팡이라도 짚고 걸어다니니 수술실에서 나오던 그때를 생각하면 하늘만큼 땅만큼 감사한 일로 여겨진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에 현실의 고통들이 도망가나보다.

현재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언제나 바라보게 되는 기준점이다.
우리네 삶도 신축성 있지 않으면 큰 일 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돌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자꾸만 무언가에 목말라 했지만 돌아보니 그동안 누리고 깔고 앉아 있는 것들도 꽤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12월의 하루 하루를 쓰다듬는다.

어쨌든 집도 절도 없는 신용불량인생들이 세상에는 즐비하다.
모양과 명품이 아니라도 내가 손 때가 묻어나 달아버린 물건들에 대한 애착, 덜 가지려는 노력, 끼니를 굶는 것도 아니고 빚이 있는 것은 갚아나가면 되는 것이다.

될 수 있는 대로 사랑의 빚 아니면 지지 말아야 할 일, 내가 가진 것들을 최소화시키고 나머지는 다 돌려줄 일이다.

언젠가는 다 우리는 왔다 돌아간 사람들이 될 것이다. 아니 온듯 깨끗하게 다녀가는 길이어야 한다.
이른 새벽에 우리 집 뒷산에서 야호라고 외치는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심심하지 않게 들린다.

그럴 때마나 수녀가 된 그 은주 언니가 떠오르고는 한다. 청담동에 살던 그 언니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주 작은 것만 가지고 살고 있으리라. 그때 내게 조용조용하게 말하던 그 품새처럼 목소리가 너무 커진 우리들은 좀 목소리도 고를 일이다.

자기 목소리조차 너무 남용하면 안된다. 자신이 크게 떠들고도 무심할 때 누군가에게는 큰 고초가 될 수 있다.
또 산길을 걸으면서 혼자 들으면 좋겠는데 소리를 크게 흘리면서 뉴스나 노래를 듣고 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참 안 좋다.

그뿐인가, 나무를 때리거나 거기에 등을 탁 탁 부딪치며 괴음을 내는 이들은 더 거북상 스럽다.
그럴 때마다 눈에도 거슬리고 귀에도 거슬리면서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그냥 조용히 왔다 가면 정말 좋겠다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피해를 덜 줄 수 있는가보다는 대체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동에 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왜 이 말이 마음의 문을 소리없이 열까?

자신을 소리 소문없이 조신하며 사는 이들처럼 우리도 몸과 마음을 좀 고르며 조신하게 할 일이다. 마음껏 배부르기보다는 조금은 배고픈 것 같은 상황일 때 우리몸은 편하다.
이세상의 어디에 살든 늘 아니온듯 다녀가듯하면 참 좋겠다.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국제로타리3690지구 홍보위원장(전)
•김포여성로타리 초대 회장(전)
•김포여성의전화 초대 상임대표(전)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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