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이사

이른 아침부터 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영하의 추위라는 아나운서의 다급한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는 하지만 하얀 눈이 왔다는 신선한 어린아이같은 감동이 그대로 몸을 산으로 몰고 나간다.

자연에서 ‘마음의 똥을 누는 일’을 날마다 하고 살면서 멈추는 것이 사실 더 내게는 부자연스러웠던 세월이 꽤 오래이다.
겨울이면 눈이 오는 대로 여름이면 비가 오는 대로 그렇게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누구에게도 새로운 날이 열리는 제 2의 운명이 있다.

2002년 12월은 그렇게 내게는 시리지만 얼어붙지 않으려 애쓰던 아픈 겨울이었고 옛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시작의 시점이었다.

그해겨울 국립암센터에서 한 쪽 가슴을 도려낸 채 정발산을 바라보았을 때 하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꼭 내눈에는 신선으로 비쳐졌다.
 
‘나도 반드시 일어나서 저 산을 두 발로 걷고 또 새와 같이 날으리라.’

다시 또 그 계절 그날을 맞고 보내며 이제는 내가 걷지만 내가 걷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는 걸음을 걷는다. 단지 걸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지 않는 마음의 행복이 있다.

한 걸음 걸음 속에서 자연과 구분이 없이 하나가 되는 고요함을 맞이하는 그 기가 막힌 경험. 하얀 눈이 가득한 산이 그냥 마음을 들뜨게 하고 그곳, 하얀 에너지 속을 걸으며 얻는 되살아 나는 힘과 ‘쉼’이 있다.

하얀 눈 사이로 맞이하는 아침햇살을 볼 때마다 날마다 신기함 이상의 빛과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오랫동안 의식과 행동을 지배해온 거대한 불순물들은 날마다 걸러지고, 부서져야 할 것들은 왜 그리 많은 건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늘 반복속의 깨달음의 과정이다.

‘고통이 없는 행복’과 ‘비움이 없는 충만함’ 그리고 ‘집착이 없는 적멸’과 ‘죽음이 없는 삶’은 없다고 했다.
고통이 온 몸과 정신을 마비시킬 만큼의 압도적 소식을 만나고 싶지 않지만 때로는 그런 충격을 우리는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세계와 나라의 큰 충격이나 개인적인 아픔들,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진 죽음 이상의 아픔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그런데 거대한 고통에 노출되어본 사람들이 가지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삶과 죽음이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경지, 몸을 꼬집어도 아픈지 어떤지 모르는 그런 일들을 겪어본 사람은 견디는 힘이 강하다.

어쩌면 생명의 미래는 견디는 힘에 달렸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같은 조건이라도 견디는 사람이 있고 쉽게 좌절하거나 끈을 놓아버리는 이가 있다.
지나고 나서 할 수 있는 해석이기도 하지만 고통의 경험이야 말로 행복의 맛을 알게 한다. 가난하게 비워봐야 충만함의 기쁨을 안다.

집착이 없는 상태의 평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함과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서 삶을 통열하게 사랑하고 절절하게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된다.

날마다 살아있는 한 어떤 사안이든지 우리들의 삶은 문제를 만나고 그것은 어떤 민감성을 갖고 계속해서 자극을 한다.

가끔 적어도 잠을 자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과제들은 아직 다 해결되지 않은 어떤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고통을 이겨냈던 흔적은 우리에게 코드화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를 진정코 어려움을 딛고 견디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는 승리의 코드이다.

겨울, 혹독한 단련에도 불구하고 결코 마음이 얼지 않는 한 우리는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이 겨울혹한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우에도 불구하고 결코 마음이 얼어버리지 않기를 기원한다.

현재가 미약하다해도 마음만 얼어붙지 않으면 모든 것은 언젠가 하늘에 가 닿고 거룩한 생명의 울림이 될 것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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