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

건망증이라고 했던가?
누구나 그렇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내내 수첩을 잃어버리고 황당해서 내내 찾았다.

그것도 중요메모이다. 수일간에 걸쳐 수고한 것들이어서 도무지 기억만으로 글을 쓰는 것만은 매우 곤란한데 그 지경이 되어버렸다.

가끔 핸드폰이나 차 열쇠를 어디에다 두었는지 몰라 헤맬 때도 있었지만 다행하게도 이내 찾아냈는데 어제 숨어버린 수첩은 도무지 이틀째나 애간장을 태웠다.

일을 하려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갔는데 도무지 이리저리 기억의 갈피를 찾아보아도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숨어버렸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도 어제 미해결된 과제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도대체 그 빨간 수첩은 어디로 간 걸까?"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아침 일찍 차의 시동을 걸었다.
없어진 곳은 사무실이 아니면 집일 터이다.

하지만 영 나올 기미가 없다. 글을 쓰는데 필요한 인터뷰 자료였으니 다시 만나고 인터뷰를 해야 할 판이다. 당혹스럽다.

몇 날의 수고가 다 휘발되어 버렸다.
언젠가 전 재산을 털어서 산 회사기밀 자료를 도둑맞아 부도가 났다던 사장님의 경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상하게 사람은 비교하면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작은 근심은 큰 산에 가리며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우리는 간혹 우리 곁에 있던 자연스러운 것들이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옷가지에서부터 장신구, 그리고 그 밖에 더 대단한 것들도 어느 순간 없어진다.

곁에서 살같이 굴던 사람도 헤어질 때는 영락없다. 늘 친숙한 것들이 사라질 때의 불편함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우울하게도 한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던 것들이 그렇게 소중했던 것들이라는 것은 잃어버리고서야 안다.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자료들, 그것도 늘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잃어버리는 순간 휘발되어버린다. 결국 무엇이든지 잠시 빌려서 쓰는 거다.

'작은 먼지' 하나도 우리와 인연이 다하면 가고야 만다.
진정으로 완벽한 내 사람도 없고 내 것도 없다. 나만의 정보도 없다.

결국은 나누고 더하여 줄 것들이어야 한다.
사람의 인심의 변함과 굴절을 약 올라 하지만 우리도 때로는 그 사람들 중의 하나 아닐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현상을 날마다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사사로이 다른 사람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으로 방향을 잡기도 한다.

우리는 날마다 떠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존재로 세상을 산다.
그리움이 산처럼 커도 보내야 할 때가 있고 보기 싫어도 만나야 할 때도 포기하기 싫어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

산이 막혀 못 만날 때도 있고 강에 배가 뜬 듯이 기어이 밀려오고 부딪쳐오는 만남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집착이란 것이 가당치 않은 듯하다.

무엇인가 가장 고귀했던 그 곳과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고 없는 감동과 감각이다.
목숨조차 더 많이 놓아버린 적이 있건만 '수첩'을 그다지 놓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불편해 하고 칠칠치 못한 자신을 벌주던 마음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

늘 그렇지만 사람은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나보다.
'가버린 것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 올 것들에 대한 기대를 할 일이다'라고.

특히 지난 일들이나 벌어진 현상에 집착하는 일들이야말로 현재와 미래를 많이 힘들게 한다.
이미 가버린 것에 연연하다보면 기운은 배로 빠지고 위축된다. 새날 새 기운 새로운 손길과 만남을 기대해야 할 듯하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