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본지 대표이사

그렇게 휘몰아치던 태풍도 가을 하늘의 높고 푸르름을 영원히 검게 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바라보는 세상은 다시금 희망을 가지게 한다.

뜨겁고 어렵고 힘들었던 계절인 여름을 살아내느라고 고생한 생명들은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금번 태풍에 수 십 년 된 거목들이 밑둥부터 뽑히거나 부러진 것을 보고 생명은 누구나 가는 시간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살날이 백날이라고 하여도 가는 날은 순간이다.
모든 일이 공을 들여 이룩하려고 하여 애가 타도 잘못하여 무너지는 것도 순간이며 날개도 없이 추락한다.

때로는 오랜 인연도 단 하루아침에 끝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한다.
엊그제까지 "통닭에 맥주한잔 시원하게 하자"던 사람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이들도 영원한 곳으로 간다.

나무라고 다 오래 사는 줄만 알았더니 수십 년을 못살고 가는 생명들도 많다.
장릉산 기슭에는 이번 비바람에 가지가 상하고 아파서 기울어진 나무도 많고 길가로 쓰러져 이미 톱질된 굵디굵은 나무들을 본다.

하루의 근심은 하루에 족하다는 것은 그래서 옳다.

모든 것은 늘 언제 어떤 식으로든 가고 있다.
 어쨌든 시간은 간다. 시간이 가는 것은 잊을 것은 잊혀진다는 뜻이고 얻을 것은 얻어진다는 뜻이다.
아무리 안 풀릴 것 같던 문제들도 시간이 간 뒤에는 색 바랜 표지와 같이 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이면 해가 지는 바와 같다.
억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 뿐이다.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면 오노라 가노라 굳이 하지 않아도 하루를 잘 살게 되어있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참 힘들다고 하지만 집착한다고 해도 계획을 세울 뿐 이루어지는 것은 내 마음대로나 내 마음만큼 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에너지로 사는 것은 한계용량이 다할 때가 있다. 그것이 방전되면 그만이다.
한 사람의 에너지의 총량은 그 사람의 그릇이상을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의 그릇이어야 한다.
물이 담기면 물그릇이며 밥이 담기면 밥그릇이 될 각오로 비우고 살아야 그림같이 사는 법이다. 늘 자신의 용량을 초과하는 생각 속에서 튀는 행동도 나오고 번뇌의 밤도 찾아온다.

모든 것은 내가 불러들인 것일 뿐 만 아니라 상호 만들어 낸 결과를 이리 좋다 저리 싫다 말할 필요도 없다.

단지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바라보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할 일이다.
가을이 오면 사람들도 익은 대로 열매가 된다.

차곡차곡 맛 들어 익은 사람은 단 맛이 날 것이고 엉성하게 익은 맛이 나는 사람도 될 것이다.
산길을 걷는데 어떤 이가 밤 한 톨을 손에 건네주었다.

"올해 밤은 정말 고구마 쪄먹는 것 보다 더 맛이 없어요. 차라리 밤고구마 맛이 더 달아"
알토랑 같은 밤의 형상을 하고 있어도 정말 고유의 밤 맛을 잃으면 고구마만도 못하다.
 고구마와 밤을 굳이 나누거나 우열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각기 고유한 것의 맛을 잃으면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니 헷갈릴 일이다.
어쨌든 인생은 힘들다고 하지만 결국 돌아보면 풀리는 방정식이다.

인내라는 강을 건너 실족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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