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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라’
  • 박영준(김포중앙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2.04.0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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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준 목사(김포중앙교회)

사람의 모든 두려움은 죽음과 연결된다. 아무리 큰 병에 걸려도 죽을병이 아니면 두렵지 않다. 별로 큰 증상이 없어도 죽을병이면 무섭다.

죽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간다. 아무 것도 남겨 두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시킨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놓고 떠나야 한다. 그래서 죽음은 더더욱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신앙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것이 믿음이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학생도 합격과 불합격에 의해서 인생이 결판나는 시험을 보고 나면 충분히 합격할 만큼 시험을 잘 치러도 혹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합격증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내 손에 합격증을 쥘 때까지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죽음을 통과해서 하나님 앞에 가야하고, 죽음은 인간이 딱 한번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당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믿음 좋은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이나 공포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과는 다르다.

2002년 9월 11일 전 세계 사람들은 무서운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영화처럼 보았다. 비행기가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 건물로 돌진해 들어가고 건물이 화염에 휩싸이는 광경이었다.

이 광경을 본 미국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런데 똑같은 두려움을 느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비행기를 더 이상 타지 못한다.

비행기 사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꼭 비행기를 타야하는 직장을 다닌 사람들은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까? 그 길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일생에 단 한 번 경험하는 것이다.

비행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지만 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일단 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다음부터 물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죽음은 일생에 한 번 경험하는 일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경험해야 되기 때문에 예수 믿고 부활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느냐 그 두려움을 극복하느냐 의 차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올 때에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때로는 죽음 자체보다 더 무섭다.

몇년 전에 러시아에서 철도에서 일하는 일꾼이 냉동실 안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안에서 문을 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 후에 얼어 죽을 것을 예상하고 볼펜을 꺼내서 벽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춥다. 점점 더 추워진다. 내 몸은 냉동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날 아침에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에 그 사람은 죽어 있었다. 그러나 얼어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온도는 영상이었다.

그 냉동실은 기계가 고장이 나서 작동하지 않는 냉동실이었다. 이 사람은 얼어 죽은 것이 아니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지금은 부활의 계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을 부활절이라고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망이 생명을 빼앗아가지 못한다고 믿는 신앙이 있다.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고 소리 쳤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부활과 영생을 믿는 나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신앙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오면 두려움을 잘 극복해야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 믿음이 자라고 마음에 큰 기쁨이 임하게 된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망 권세에서만 구하신 것이 아니고 죽음의 두려움에서도 건져 주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부활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라. 우리는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가 죽기 전에 느껴지던 것과 같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를 영원히 삼킬 수는 없다. 죽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다. 고난이 있어야 희망이 있듯이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죽음은 독을 잃었다. 죽음은 이빨을 잃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문호 톨스토이의 명언이다. 십자가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의 무거운 십자가가 있다. ‘저 사람은 팔자가 좋아,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몇 가지의 어려운 십자가를 지고 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도장에서 스스로 갈고닦는 백련천마(白練千磨)의 고된 훈련을 쌓아야 한다.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는 생명력이 약하지만 벌판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화초는 생명력이 강하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육체의 죽음을 남겨 놓으셨을까? 사망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로 나아온다.
교회 하면 이를 갈고 예수 믿는 것을 죽기 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들도 죽을병에 걸려서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는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더욱 정신을 차려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믿는 사람에게는 부활의 영광이 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다. 이 부활의 신앙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부활의 자녀가 된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의 죽음은 곧 내 죄에 대한 죽음이요, 예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인 것을 믿는 믿음의 삶이 중요하다.

박지약행(薄志弱行)의 나약한 인간은 인생의 어려운 십자가를 견뎌내지 못한다. 심신강건(心身强健)한 사람만이 승리의 용사가 될 수 있다. 인생의 어려운 싸움터에서 우리의 정신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우리의 인격을 연마해야 한다. 세파의 사나운 비바람 속에서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한 사람만이 능히 인생의 달인(達人)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신앙의 힘이다.
 

박영준(김포중앙교회 담임목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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