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이사

흙냄새가 그렇게 좋더라고 아들이 말했다.
신출내기 이병인 아들은 해군에  입대해서 처음으로 바다로 나갔다.

직접 본  바다는 영화같이 낭만적인 장면이 아니더라고 했다.
하루 스물 네 시간 출렁이는 바다에서 대기, 긴장상태로 태풍의 바닷 물결과 전투준비자세 속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육지로 상륙하면서 본능적으로 코로 제일 먼저 흙냄새를 찾게 되더라고 했다.

바다의 엄청난 힘에 놀라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계의 좁음을 절감하면서 압도당하는 기운이 실로 두렵고 경이로웠다고 했다.
흙냄새가 그렇게 좋은 줄 난생처음이었단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면서 우리는 자못 우리가 자연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늘 있는 땅의 냄새를 그렇게 좋다고 느끼고 살기에는 우리는 너무 바쁘다.

하지만 자연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사람은 정말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정복’이란 오만한 단어를 감히 쓸 수 없다. 우리자신이 자연의 인생의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 나면 다시 미세한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 곧 흙은 삶도 담아내고 죽음도 담아낸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힘, 그것은 흙이며 무위자연이다.
흙이야 말로 생명을 담아내고 살리고 죽이는 힘을 가졌다.

‘보이는 생명’으로 살다가 ‘보이지 않는 생명’으로 돌아가면 작은 흙무덤 하나가 남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감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산책길에서 붉은 황토빛에 취해 본 적이 있는지?

벗은 발로 흙을 밟고 걷노라면 우리의 발에는 흙을 통해 올라오는 기운을 감지하는 전기선이 하나 더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흙과 하나가 된 발가락의 오감을 통해 느껴오는 생명력이야 말로 정말 감칠맛 난다.    
비가오고 나면 비릿한 냄새와 함께 흙냄새가 미치도록 좋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른 아침 다시 세수한 듯한 산길에서 빗물과 함께 코 끝에 징하게 몰려오는 흙내음이야말로 살아있는 냄새이다. 그 냄새를 날마다 맡고 살 수 있는 것만 하여도 축복이다.

살아있어도 죽음의 냄새가 날 수 있거니와 보이지 않아도 생생하게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느낌들 속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흙의 품에 안기는 것을 소망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흙에서 왔다가 흙에서 돌아간다는 것은 불변의 일이다.
어떤 지위에 있었던지 흙으로 돌아갈 때는 낮아진다. 잘났던 모습도 못났던 모습도 흙은 흙으로 만들어버린다.  

낮은 곳에 있는 흙이야말로 우리를 영원히 담아줄 그릇이다.
하늘을 향해 코를 들고 다닐 때는 결코 발아래 땅을 잘 모른다.
자신의 마지막이 어떠할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마지막이 어디에서 마침표를 찍을지 아는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와서 만난 어떤 인연이 자신의 눈을 감겨줄 지 모르는 일이다.
애써 키워준 자식의 품에서 임종을 맞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일전에 한 기업인을 만났을 때 그는 매우 인생관이 달라져 있었다.
갑자기 사업관계상 일본에 출장을 갔고 그는 거기서 지진을 만났다.

건물 안도 건물 밖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종이박스 한 장을 가지고 노숙을 하면서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지독한 악몽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우리가 깨우치게 되기까지 우리는 흙의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한 순간 우리의 존재를 뒤흔드는 사건을 만날 때 우리의 눈도 광명해지는 것 아닐까!

너무 좋은 것은 잘 느끼지 못한다. 너무 당연하게 머무르는 줄만 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은 없다. 영원히 내 곁에 있는 것도 없다.
정말 좋은 것은 없을 때 비로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흙이야말로 그런 듯하다.
우리가 진저리를 치듯이 우리가 가진 것들이 갑자기 더 소중해질 때가 있다.

지금, 여기서, 건강한 흙을 밟고 서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만난 모든 것들은 다 사랑하고 품에 안을 만한 것들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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