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운전을 하면서 길을 가다가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습관적으로 길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볼 때가 있다.

길가는 사람들 중에 가슴을 쫙 펴고 걷기보다는 얼굴을 숙이고 걷는 이들도 있고, 얼굴을 찡그린 채 걷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겉에서 알아볼 정도로 어깨가 휜 사람도 있고, 바른 걸음걸이가 아니라서 걱정이 되는 모습도 있다.

'저 사람은 아침부터 굉장히 힘든 모양인가 보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간 밤에 마신 술이 덜 깨어 있는 듯 부석부석한 얼굴도 있다.

아마 하늘이 그렇게 어제와 어떻게 다른지, 바람은 어떻게 불어오는지 느껴볼 사이도 없이 그냥 재미없게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무리하다가 어느사이 흰 머리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어느정도 삶의 끈이 많이 남았다고 느껴지는 30대를 마감하고 40대 이후가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쇠심줄처럼 강력하게 버티던 끈을 놓고 허망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50대 초반의 남성들이 아직 젊고 시간이 많은 듯 한데 이미 이곳 저곳의 건강 신호를 만나고 틀니를 꼈다 뺐다하면서 허무함을 느낀다고 한다.

많은 물질을 얻으면 어느 정도 삶이 편안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년을 넘어서면서 꼭 매어달려야 하는 그 무엇의 진실이 과연 있는가라는 무상함이 우리를 붙잡기도 한다.

사색할 여유도 없이 살던 이들이 가끔 수건 하나 목에 걸고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적어도 산에 오르면 나무와 새소리들을 만난다.

사람사이에서만 관계를 갖다가 말이 없지만 우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말없는 대상들을 만나는 즐거움, 그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는 살아보면서 더욱 더 느끼는 그 무엇이다.

아침 산에 오르면 대개 젊은 이들은 없다.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 징조가 없으면 몸에 게으른 것이 사실 아닐까?
산에 오르는 이들은 한 번 쯤 건강신호를 느껴본 이들이 많다.

거의가 일정 정도 인생을 살아본 이들이 아침 산의 공기의 신선함과 달맞이 꽃의 아름다움을 찾아 일찍 잠을 털고 일어나 산을 찾는다.

요즘 장릉산에서 흐르는 약수는 그 물줄기가 세다.
땀을 흘리며 올라온 산에서 마시는 한줄기의 약수와 한 손 가득 퍼올린 물로 세수라도 하고 나면 빈손으로 왔다가는 인생을 만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내가 밟고 서있는 흙 한줌이 그옛날 누군가 이땅에 왔다 간 사람의 살점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는 순간 삶은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의 말대로 사람은 죽음을 사색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산에 오르면서 많은 산소를 지나칠 때 머리가 쭈뼛하는 경험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는 누워있고 나는 걷고 있는 차이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구나 이제는 육신을 땅에 영원히 뉘일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육신이 흩어져 땅으로 돌아가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산에 올라 나무에 기대고 서 있을 때 그 나무의 꼭대기를 쳐다보노라면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날들을 버티고 살아온 세월을 느끼고는 한다.

사람도 365일 나보다 밥을 많이 먹으면서 느꼈을 오뉴월 하루 빛의 의미와 인생의 고뇌와 경륜을 생각할 진데 나무는 말없이 모진 비바람을 지붕도 없이 겪으면서 떳떳이 살아 남았음에야.

내가 아는 한 여성은 나무나 꽃을 보면서 말을 건다는 이가 있다.
“참 잘생겼다. 내가 네게 기대서 잠시 쉬다 갈려고 하는데 괜찮냐”고 묻기도 한단다. 정말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 말을 한다는 것, 그것이 식물이 될지라도 그것은 자신에게 나즈막히 속삭이는 언어가 아닐까?
그것은 어쩌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세상 모두 어떤 사람일지라도 우주를 모두 돌아다니며 인생을 소화할 수는 없다.
꽃 하나, 나무 한그루에 대한 애정을 진실하게 쏟고 보살피는 일이야 말로 우주의 한 축을 붙들고 사는 진실한 생의 의미가 아닐까한다.

세상을 진실하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 대한 깊이를 소화하는 데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변화가 많은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앉아 있다 해도 그것은 잠시일 뿐.
무상함을 벗어날 수는 없으리라.

언젠가는 홀로 앉아 풀잎이 바람과 함께 노니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나보다 이 세상에 나온 어떤 나무 한 그루도 엄숙할 수 있음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기 이를데 없음을 본다.

유인봉 (사)김포여성의 전화 상임대표

유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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