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만나고 오면서 보름달이 더 크고 휑하다고 느낀다.

정월에 생신이 들어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각처에서 여섯 남매가 모여들었다. 3개월째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의 85회 생신을 그렇게 맞이했다.

여섯 형제가 얼굴을 모두 내밀며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행여 어머니가 알아맞히면 박수를 쳤다.

"엄마 나는 누구야?"를 물으면 어머니는 어린 아기처럼 웃으며 혹은 맞추기도 하고 혹은 틀리기도 하면서 자식들을 짚어나갔다. 전혀 그러리라고 믿을 수 없던 어머니의 기억은 그렇게 우리와 멀어지기도 하고 파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행여 어느 부분을 보면 확실하다고 느끼다가도 영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뭐라 말릴 수가 없다. 어머니는 삶과 삶을 넘어선 어떤 세계에서 보여지는 경험들을 이야기하지만 보이는 세계속에 사는 자식들은 그것을 다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그렇게 가장 아픈 살점을 나누어준 자식들을 기억에서 잊어가며 점차 이 삶에서 저 삶으로 건너가는 연습중인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늘 기다리는 마음으로 요양원에 들어갈 때 가져갔던 보따리는 어머니 옆에 놓여져 있다. 문 가장자리의 가장 가까운 데에 자리를 잡으시고는 절대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단다.

"저기 산 위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빨리 오라고, 기다리고 있어서 가야하는데" 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눈빛이 참 딱하기만 하다.

모처럼 요양원 외출을 시도해서 우리 모든 가족들과 한 끼의 식사를 해 보았지만 역시 이동하는 것은 어머니를 최대한 힘들게 하는 것일 뿐, 행복을 드리는 일이 안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그것 또한 인생이다. 처음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 놓았을 때 나는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신다고 들어가신 모습을 두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었다. 통곡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자식들의 얼굴을 보자니 눈빛을 맞출 수도 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방황스러움에 사로 잡혔었다. 부모를 두고 와서 나는 남편과 자식과 살자고 하는 짓인가 싶어 무참했던 마음으로 몇 달을 지내며 '아 정말로 내가 방황하고 있구나' 하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고 결코  잊을 수가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백일만 참으면 서로 괜찮다'는 먼저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참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느끼며 또 그렇게 세월이 가고 있다.

'꿈결에서도 그리운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 삶을 부여받았음에도 현실적으로 내손 안에서 보살펴 드리지 못하는 것은 누가 아무리 해석을 달아주고 위로를 해 주어도 결코 가벼워질 수 없고, 편해질 수도 없는 무거움이다.

무슨 일을 해도, 무엇을 먹어도 어머니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사념에 빠지게 된다.

제일 어려운 일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힘겨운 이별들이다. 그중에 아마 어머니와의 헤어짐이랴! 어떤 이는 그래도 치매에서 잠시 헤어날 수 있는 순간은 자식을 알아보는 순간이니 모시고 사는 것이 나은 일이라고도 하고 그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떤 점잖은 자리에서 어머니 이야기가 나와 서로 한바탕 운적도 있다. 그분은 자신도 10여년전 어머니를 시설에 모셨지만 당시 몸은 편한 반면 돌아가신 지금 마음이 그리도 오랫동안 괴로웠다고 했다.  그이는 '어머니'라는 CD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내게는 어머니가 오랫동안 끼셔서 달아버린 금반지와 고쟁이 주머니에 간직했던 몇 푼의 용돈이 남아 있다. 모든 것에서 어머니의 냄새가 난다.

우리는 모두 시대적 산물이요, 한 세대를 살 수 밖에 없다. 이제 중년 이상을 사는 이들은 모두 요양원을 마지막의 공간적 선택으로 상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한다.

날마다 모셔오고 싶은 심정적 마음과 현실 사이에 서 있다. 보름달을 봐도 꽉 찬 것 같지 않음은 어머니를 현실에 모시지 못함이지만 그와 같은 어머니들이 그 붉은 벽돌집에 서른다섯 분이나 계신다.

그 어머니들의 80년 역사가 그곳에서 마지막 황홀한 햇빛처럼 살아있다. 가슴이 늘 먹먹하지만 어머니는 그곳에 계시고 목소리조차 닮은 자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한 달에 한 번 그 언덕바지 붉은 벽돌집으로 간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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