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버지는 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늘 말해 주곤 하셨다. 어떤 집에서 살고자 꿈을 꾸어야 한다고,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에서 세 번은 이사를 해야 한다고, 더구나 한 번은 자신이 살 집을 지어보아야 한다고.

내가 다섯 살 때 이사한 집은 아버지가  숨을 거두시기까지 사셨던 집이다. 그 집 뒤 안에는 몇 사람이 안아야 할 만큼 오래되고 큰 회나무가 있었다. 너무나 큰 회나무는 둥그런 구멍이 있었고 토끼가 도망가서 숨고는 했었다.

아버지가 열두 살 때 그렇게 대단하고 으리으리하게 보았던 옥당 이교리라는 사람의 집은 아버지가 평생 살고 싶었던 집, 꿈꾸던 집이 되었다.

비록 옥당 이교리의 후손들이 잘 가꾸지를 못해 여기저기 흠이 남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비경제적이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집을 사고야 말았다. 그리고 집을 살 때 들였던 비용만큼을 더 들여서 고치고 다듬었다. 어릴 적 내 눈에도 어머니의 끝없는 불만이 아버지의 꿈을 사고자 했던 마음을 이기지는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도 집도 고치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돈을 쓰면서 강조하는 지론이고 행복이었다. 그 집은 대청도 있고 대들보가 크고 서까래가 나란히 보이는 집이었다.

여름철 대청마루에 누워 천정을 바라보면 그곳의 나란한 서까래가 그렇게 편안해보였다. 광에는 늘 어머니가 큰 솥에 고아 만든 엿이 콩엿, 깨엿, 생강엿으로 종류별로 있었고 홍시도 있었다. 괄괄하신 어머니한테 혼나면 광에 몰래 숨어들어가 엿을 깨물면 혼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한 것이 그 집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미울라치면 아버지가 그 집을 사면서부터 힘이 들고 어려워졌다고 하소연을 했지만 우리는 그 집에서 커서 모두들 출가했다. 세월이 지나 모두 아름다운 집들을 잘 꾸미고들 살지만 난 아직도 촌스럽게 서까래가 보이고 마루가 있는 집이 좋다.

억지로는 안 되는 것이 있나보다. 아주 너무나 틈이 안 보일 정도의 정돈된 모습을 난 힘들어 한다. 사람도 집도 조금은 비어있고 밖의 기운과 안의 기운이 드나드는 틈새가 있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을 보면 환기가 덜 되어 있음을 가만히 느낄 때 바라보는 것이 답답하다. 너무 완벽한 꾸밈새가 있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에 서 있는 것도 힘들다. 안온한 집안의 공기에 갇혀 있다가도 밖의 싸늘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 머리를 두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집은 우리를 아주 소중하게 담아주기도 하지만 집과 밖의 기운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나도 물론 완벽하게 다 환기가 되어있는 사람은 못되지만 아직은 그것이 안 되는 탓에 "내가 꿈꾸는 집"을 읽는다. 남편은 나보다 한 수 위다. 나는 단지 정서적으로 마음에 집그림을 그린다면 그는 수많은 집에 관련한 서적을 탐독하며 즐거워한다. 각종 정원의 사진과 글 그리고 구들을 놓는 방법이나 볏집을 이용한 집 짓기등 다양한 건축양식에 놀라워하며 동호인들의 모임까지 기웃댄다.

어디를 가다가 아름다운 집을 발견하면 차를 세운다. 아름답고 안성맞춤인 기운 좋은 방향의 집 구조를 보면 집을 지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에너지이고 그런 생각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 집이 아닐까!

아버지 ‘인생을 살면서 세 번은 이사를 하고 적어도 한 번은 자신이 꿈꾸는 집을 지어보라’던 그 말씀처럼 날마다 나는 한옥을 지어보는 꿈을 꾸고 있다. 그 그림에는 하얀 버선발로 문지방을 곱게 넘나드는 중년의 부인 모습을 하나 그려 넣었다.

살고 싶은 집을 꿈꾸면서 희망이 저절로 생긴다. 희망이 있으면 절대로 사람의 에너지는 작아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앉은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적어도 일생에 세 번의 이사와 한 번의 집짓기를 하고 싶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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