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주 즐거운 습관하나가 생각난다. 한 두어 가지의 빨랫감을 일부러 찾아내어 빨래터로 놀러나가던 기억이다. 그때의 빨래는 무겁고 힘든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놀이였던 것으로 생각난다.

‘바우박’이라는 큰 넓적한 바위가 있는 곳, 샘물이 졸졸 흘러내리던 그 도랑가에서 여름날 한 두어 가지 옷을 비누칠해서 비비고 흘러내리는 물에 헹구면 그렇게 손과 더불어 마음이 시원해지던 일이 떠오른다.

이제는 기억의 저편 한 조각으로 머무는 빨래의 추억은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생기의 모습으로 재생되었다. 종일 입었던 모시옷을 후다닥 빨아 물기를 빼고 풀을 먹여 저녁내 널어놓았다. 적당히 마른 옷을 아침에 쓱쓱 다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

모시옷을 즐겨 찾아 입으면서 하루 종일 입었던 옷을 빨기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릴 적 기억과 함께 빨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돌아와서 몸을 담고 다녔던 옷가지를 조물조물 해서, 풀기를 입혀 널었다가 다림질하는 것은 정말 시원한 나의 여름피서풍경이다. 전혀 유행을 타지 않는 옷들이라 십년을 입어도 풀기만 다시 입히면 그만이다.

종잇장처럼 환하게 펴지는 다림질도 귀찮을 이유가 없다. 우리 집에는 드라이크리닝을 할 옷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도대체 세탁소나 미용실을 가는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내게 집안 구석구석 아름다운 구성은 평생 서툴지만,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고 느끼고 산다.

부자라는 것이 물질적인 풍족은 물론, 정신적으로 충만한 만족을 누리는 삶이다. 마땅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한다면 귀찮은 일이 다시 즐거운 일로 변한다.

대부분 머릿속만 복잡할 때도 빨래를 손으로 비비며 씩씩하게 살 일이다. 손에서 느껴지는 비눗방울의 매끄러움과 찬물의 신선함이 손끝에서 머리까지 청량감으로 전해질 때 아무래도 행복해지지 않을 방법이 없다. 손빨래를 통해 마음을 빠는 일이고 풍성한 우주가 느껴진다.

그러한 까닭에 누리기를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의무가 아니라 ‘누림’ 그자체로누리고 사는 거다.

나는 암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마음이 행복한 원리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리 비참한 시기에도 생각의 위력은 대단하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는 변화와 재생의 기능이 바로 단순한 빨래에 있다는 것도 말이다. 하여 나는 자주 특히 여름날 빨래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 빨아서 복원해서 입고 다시 또 새 옷처럼 새 마음으로 사는 일말이다.

가끔 그리움이 울컥하니 솟아오를 때조차 눈물 한 소큼 흘리며 손수건을 빨아버리자. 잔잔한 평화가 밀려오고 오랜만의 단잠 속으로 빨려 들어 갈 것이다. 내 손에서 떠나보낸 것에 대해서는 마음으로 놓아주어야 한다.

빨래를 통해 때를 내어보내듯이 흘러가게 두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보내지 않고 움켜쥐고 있으면 행복도 부도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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