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전 주인은 특이한 취향의 사람인 것을 알았다. 방마다 엄청나게 큰 대형 거울을 달아 놓고 살고 있었다.

집을 둘러보면서 참으로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6년 전 9월 말에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살면서 나는 괜찮아 했는데 남편은 집수리를 하면서 다른 방의 거울을 모두 들어냈다. 주인이 바뀌면서 집은 확실히 그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전 주인은 형광색 계통의 찬란한 벽지를 사용했지만 우리는 대부분 하얀색으로 집안 내부를 꾸미고 산다. 꾸몄다기보다는 그냥 바르고 산다. 욕실도 하얀색이고 그 한 면은 거울이다. 나는 그 거울을 좋아한다.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어서 좋다.

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때임을 알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 나를 직면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자주 거울 속의 여자를 오랫동안 바라보고는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가슴과 한쪽의 유방이 나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잘려진 가슴과 상처는 내 삶의 흔적이다. 6년 동안 그야말로 살기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걸었기 때문에 넓적다리는 잘 발달되어 있다. 일단 남편의 다리보다는 더 굵으니까 남편이 나를 보고 놀린다.

“아이고, 든든합니다. 아무생각이 안나요.” 오른쪽 팔은 수술한 왼쪽 팔보다 더 굵다. 내 모습을 빼빼 말랐다고 말하던 이들도 나의 굵은 다리와 종아리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살아있다는 증거로 자라고 있는 긴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가슴을 덮어준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면 특유의 당당함이 생긴다.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다. 신체의 한 부분이 없다고 해서 완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영혼의 힘이다.

햇수로 따져서 6년, 만 5년이 완벽한 육체의 힘이 아니라 마음의 힘으로 살아온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며칠 전에 아들과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가만히 있어라. 내 가슴이 어디에 있더라?” 하면서 차의 앞 서랍에서 가슴을 찾아 살짝 왼쪽 가슴속에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우리 엄마는 아무데서나 가슴을 찾네. 하항”

어떤 이들은 여자의 자존심이 유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유방과 자존심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그렇다. 어떤 모습에서 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것을 더 두렵다고 믿는다.

가끔은 인터뷰를 하면서 사람들이 너무 포장하는 말을 하면 나는 재미없어 한다. 세월을 어느 정도 산 사람은 이미 눈치가 백단이다. 듣기 좋은 말인지 진심어린 고백인지를.

몸을 사리지 않고 살아온 모든 상처는 영광이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찾아야 한다. 두려운 없는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사랑하면 다른 일들은 저절로 해결된다. 살아있다는 단순한 즐거움 때문에 나는 길을 걷다가도 소리내어 운다.

거울속의 여자를 나는 날마다 자유롭게 놓아주며 산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조그만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만 알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커서 늘리면 그렇게 자꾸 늘어난다. 다른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지라도 마음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상하게 하는 것도 상하지 않게 하는 것도 내 마음의 선택이다. 거울속의 여자를 오랫동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그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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