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주름이 점점 더 선명해진다. 눈가의 잔주름은 옛말이고 이제는 입가에도 잔주름이 새롭게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몸에 보이는 주름도 하나의 새 길은 아닐까? 우리의 국토에 이곳저곳 길을 만들듯이 우리의 몸도 세월이 가면서 새 길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뒷산에도 여러 개의 작은 오솔길들이 새로 생겼다. 한 두 사람이 걸었음직한 발자국에 눌린 낙엽들을 보았는데 어느 사이 작은 길이 되어 있곤 한다.

하여 가끔은 길인 듯 아닌 듯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보기도 한다. 누군가 이 길을 걸어서 어디로 나갔을까 상상하면서.

그러면 알게 된다. 늘 걷던 길보다 괜찮은 길이 또 하나 생겼구나 하고 말이다. 요즘은 그렇게 새로운 길을 찾아 걷는 즐거움이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넓은 길보다는 아직은 낯설지만 솔픗한 오솔길을 찾아 말없이 걷노라면 저 아래 세상에서 돈 주고 사지 못하는 평화를 얻는다.

화려한 수사가 아닐지라도 한두 송이 알아주지도 않을 곳에 피어있는 진달래 몽우리를 쳐다보면서 결코 가난하지 않은 충만함을 느낀다. 더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의 충만함은 무엇인가 충만할 것 같은 것들을 들고 있지 않을 때 온다.

인적 없는 고독한 작은 오솔길 속에서도 온다. 많은 이들이 무엇인가 찾으러 간 길이 아니라 나 혼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걸어간 그 길에서도 뜻밖에 온다.

아침햇살이 막 떠오르면서 비추이는 온갖 숲속의 삼라만상은 그대로가 보석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햇살을 마주하여 섰다가 가만히 눈을 떠보면 모든 숲속이 보석으로 가득한 반짝이는 천국이고 극락의 세계이다.

도무지 너무나 아름다워 한 발짝도 더 앞으로 갈 수 없게 만드는 그 오묘한 힘. 많은 이들이 오가는 그 넓은 길을 걸어가면서 얻을 수 없는 그 찬란한 데이트.

사람과의 연애가 이토록 배반 없는 즐거움을 줄까? 결코 멀리 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다 돌아서야만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뜨면 서 있는 그곳이 천국이고 그곳이 천상의 세계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다 천사고 선녀다.

그 사람에게 난 길을 잘 찾아 두드리면 천사의 문이 열리고 잘못 길을 찾아 두드리면 악마의 문이 열린다. 한 사람에게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만 알면, 그 사람의 어떤 길을 내가 걸어갔던가를 알면 말이다. 내가 걸어가 만난 그 사람이 모두 그 사람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길이 하나인줄 알고 두려워할 때가 더 많은 것은 아닐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상상이 우리의 자유로움을 구속한다.

하지만 숱한 길이 우리 곁에 있다. 사람에게도 자연도 필요하면 길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거다. 우리의 몸도 세월이 가면 이곳저곳에 주름이라는 새 길을 만들지 않던가!

더 필요하면 그 주름은 깊어진다. 우리의 삶도 오직 하나의 길로만 통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들이 내게 올 수 있도록 새 길을 열어둘 일이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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