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도 기쁠 때도 가슴에서 생각나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여 아픈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또 전하여주기도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가만히 전하여주면 그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나 보다.

좋은 일인 경우에는 ‘지나갈 기쁨’이니 음미하면서, 슬픈 일일 경우에는 이 또한 지나갈 인연임으로 길을 비켜주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많은 기쁨도 슬픔도 지나가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과거가 된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아픔이나 슬픔도 지나가면 흔적만 있거나 색 바랜 잡지의 표지처럼 무심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심함으로 대할 수 있을 때 그 사건이나 사람은 내게서 떠나간 것이다. 보고 싶어 애달아하던 사람도 지나가다 마주치는 이같이 편하게 보이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흘러갔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아 내가 그랬었나?’하고 말이다.

우리의 삶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작고 큰 물방울을 만들어내고 우리를 유혹하거나 시험한다. 매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사이 습관적으로 배어있는 어떤 삶의 지대로 마치 끌려들어가듯이 그렇게 우리는 산다.

원망해야 할 대상도 많은 듯하고 탓할 일도 많은 듯하다. 하지만 훗날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 들여다보면 그렇게 머리 시끄럽게 산 일이 남의 일만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이 간다. 아직도 털옷을 입고 있지만 눈 녹지 않은 산에서는 이미 봄이 한창이다.

겨울과 함께 늘 봄은 우리 앞에 같이 있건만 겨울만 보거나 봄만 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의 어린시절 어른들은 대부분 양력보다는 음력절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제 그걸 알 것 같다. 입춘이면 반드시 봄의 조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달력보다는 양력과 음력이 같이 조화롭게 새겨진 큰 글자 달력을 떡하니 걸어놓고 산다. 모양새는 안 예뻐도 편리하니까.

점점 익숙하게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살아오신 틀로 회귀하는 것을 느낀다. 어린아이를 지나 잘 나갈 것 같았던 청년을 지나 틀니를 끼셨던 아버지 어머니 시대로 지나가고 있다.

‘서울말씨’ 소위 표준말에 익숙했던 어투가 충청도 사투리를 쓰시던 어머니 아버지의 말투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 스스로 웃음이 나온다. 잘난 것도 못난 것도 다 지나간다.

배움도 못 배움도 학력의 차이가 별것 아님으로 지나간다. 점점 친구들도 잘나가거나 아니거나 하나됨을 느끼고 서로 만나는데 차별도 불편이란 것도 없다. 그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왜 더 살가운 것일까?

슬픔도 기쁨도 다 지나간다. 사람도 삶도 다 지나간다.

어제는 우리집 진돗개 희망이가 저 세상으로 갔다. 12년쯤 우리식구와 살았다. 우리는 집안에서, 희망이는 집밖에서. 그렇게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희망이가 떠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지나가는 것이니 희망이도 우리곁을 지나간 것’이라고.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남편과 아들이 희망이를 마무리해 주었다.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그렇게 희망이는 겉모습이 가고 좋은 기억으로 우리식구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우리는 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3월에는 누군가가 또 커다란 개를 우리집에 보낸단다. 올 식구가 생기니 간 것일까? ‘희망과 평강’이라 이름을 할까? 무엇이라 이름을 호칭하면 서로에게 좋을까?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그렇다.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서 녹여지고 생성되어 온 뜻 깊은 언어들이야 말로 삶을 관통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말들임에 그대로 녹여 가슴에 담는다.

지나가고 지나가는 것들. 그저 바라볼 수 있고 뿌리 채 흔들림 당하는 일이 없기를 스스로 바랄일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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