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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기로 했어!"

지난 겨울, 오래된 왕 수탉은 먹이를 찾고 쪼아대는 암탉이나 다른 수탉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2층의 홰 근처에서만 서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닭알을 꺼내려고 닭장 문을 열면 언제나 혼자서 까칠한 채로 표정 없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닭은 오래 사는 동물이 아니라 하니 혹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살만큼 살았을까?' 짐작하며 왠지 눈앞에서 정들었던 시간만큼의 쓸쓸함이 더해져 갔다.

날이 갈수록 점점 앙상하고 멋있던 깃털도 빛을 잃어갔다. 간혹 먹이를 먹으러 내려올 때면 눈치를 보아가며 도망치듯이 푸드덕 거리고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귀퉁이에서 잠깐 먹고 도망치듯 홰로 올라가는 모습이 서글픈 모습이어서 이 겨울을 지날 수 있을까했다.

 왕같은 홰를 치며 우리집 닭장의 주인같던 품격은 어디가고 벼슬도 빛을 잃었으며 영낙 없이 뒷방지기같은 모습으로 비껴나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네 삶을 생각해보며 나도 저렇게 늙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상징의 한 장면 같기도했다. 안 춥다고 해도 지난 겨울은 그렇게 바람과 추위와 얼음의 계절로 녹녹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은 엄청난 폭설을 쏟아놓고 물러갔다. 겨우내 잘 버티던 소나무 가지들이 폭설로 내린 봄 눈에 사정없이 꺽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봄이 돌아오는 것이 참 기뻤다.

아기진달래가 몽우리 몽우리 피어나고 살구꽃 몽우리와 목련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니 이제 만물이 살아나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당연한 것들은 없다. 다시 만나는 봄바람의 기운이 사뭇 반가운 것은 차가운 지난 겨울을 무사히 건너온 까닭이리라!

삶의 경험이 그다지 웃음을 웃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하여도 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의 잔물결과 새순이 눈에 보일듯 말듯 날마다 자라나고 있는 계절은 다시 희망이요 소생의 시간이다.

그렇게 가난한 겨울을 이기고 이제 춘분이 지나가고 아기진달래가 피어나는 계절의 따뜻한 햇살아래 다시 닭장에 봄 볕이 들고 있다.

더 놀라운 일은 겨울을 이긴 수탉이 다시 새벽마다 힘차게 울어대며 왕노릇을 하는 일의 발견이다.

어떻게 다시 기력을 회복했는지 알 수는 없다.

벼슬도 붉은 빛이 돌고 깃털도 반짝반짝 윤기가 돈다. 수탉의 회복이 내게 그렇게 미소짓게 할 줄 몰랐다. 신이 나고 기분이 너무 좋다.

 왕수탉이 홰에서 내려와 다시 암탉들을 거느리며 구구구구 모이를 같이 먹고 힘찬 날개짓을 한다. 닭장이 밝아졌다. 내마음의 어둠도 물러간 것은 물론 겨울에는 도무지 주지 않던 닭알을 아침이 되면 닭장문을 열고 하루에 서너개씩 알을 받아오는 일상이다.

수탉이 살아났다. 다시 굵어지는 발목과 암탉들을 거느리고 위엄을 찾은 일이며 힘찬 움직임이 나름 내게 기쁨이 된다.

고요를 깨는 닭들의 울음소리가 우리 부부의 이야기거리가 되고 두 사람만의 정적을 깨고 화기로운 기운이 되기도 한다.

겨우내 몸이 평안하지 못해 밖으로 출입을 못해 오던 남편이 다시 힘차게 살아날 것 같은 기대감이 올라온다. 봄의 기운으로 남편의 종아리가 다시 굵어지고 알차게 회복될 것 같은 상징의 한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이다.

 

수탉의 황금의 시간대가 다시 열리는 걸까! 다시 살기로 했어!

봄을 맞아 확실하게 다부진 생명력을 회복한 수탉이 주는 기쁨이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사는 존재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현실을 딛고 나아가게 한다.

환하게 빛나는 희망의 싹과 메시지를 찾아 지난 겨울 그토록 오랫동안 산길을 걸었다. 새벽별을 먼저 보고 해뜨는 아침부터 자박자박 산길을 걸어 돌아오면 제일 먼저 정성껏 닭장의 문을 열고 먹이도 주고, 추울까 하여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씩 부어주었다.

음식을 먹다가도 나누어먹는다는 마음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식구로구나 하는 마음으로 가져다주었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잡식성으로 모두 먹어치우는 녀석들의 모습이 고맙기도 했던 것 같다.

집을 떠나 외지에 사는 아이들과 통화를 할 때면 전화기 너머로 닭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일상의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누군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생명은 다 의미를 준다. 닭들의 희망으로 새 순이 돋는 봄의 이야기가 피어난다.

겉으로만 보면 사물을 제대로 본다고 할 수 없다. 어설픈 모습만 보고 그 상황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손실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침이 되고 밤이 되고 다시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는 늘 우리가 변화속에서 생동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언젠가 내가 살린 생명이 다시 내게 의미가 되고 생명이 되는 순간, 높낮이를 떠나 같은 생명으로 활기찬  춤을 출 일이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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