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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으로의 초대(招待)
유인봉 대표이사

평생 사랑한 것은 새벽이었다. 언젠가 열 여섯살 그쯤부터 새벽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검은 새벽의 무서움을 숨도 안쉬고 달려 불이 켜진 교회앞마당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열여섯살의 고뇌가 뭐가 그리 컸었던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새벽은 머리와 가슴을 깨워주는 그 무슨 힘이었다. 시멘트 바닥의 먼지 냄새조차 교회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렇게 향기처럼 느낀 신선함의 새벽기운은 평생 사랑한 신비함이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신새벽에 서면 언제나 설레었다. 하루가 그저 그런 기운은 없었다.
아무리 고뇌에 찬 밤이라도 결국은 지나서 새벽으로 간다. 새벽은, 아침을 열고 살아있는 찬미의 시간으로 다시 거듭나는 기회를 부여하는 시간이다.

새벽으로의 자신을 초대하며 깨어서 살아가는 사는 사람들이 지금도 어디엔간 있으리라!
이른 새벽의 조찬 모임에 달려갈 때가 있다. 그토록 많은 자동차들이 즐비하게 도로에 나와 달리고 있는 모습에 위로도 받고 도전도 받는다. 무수한 생명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작용하며 서로 끌어당겨주고 이끌어주는 힘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은 이들과 교감하고 생명의 에너지를 받는다.

“이토록 이른 새벽에 어디를 향해 저토록 부지런하게 달리고 있는 걸까!”
쉼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붉은 자동차불빛들이 꽃처럼 느껴지는 신새벽의 공기가 있다.

저마다 목적 있는 곳을 향해 달리는 이들이 같은 노선에 나란히 달린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함께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 감동 아닌 감동을 잔잔하게 받는 것에 감사한다.

때로는 삶의 질퍽한 현장에서 야수와도 같은 상황도 만나고 적잖이 당황하는 인생길이지만 한 순간, 하루의 시작을 여는 신새벽을 만나면 썰물은 가고 새로운 희망의 밀물이 반짝이며 밀려오는 것 같다.

새벽으로 초대된 시간에 깨어있어 받는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 있다. 깨어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벽은 에너지의 보고이다.

삶은 유한하고 검은머리는 어느 사이 하얀머리칼이 더 많아지는 세월과 검버섯이 늘어나는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다. '언제 이렇게 된 것인가'를 묻는 것과 동시에 그래도 우리에게는 신새벽으로 초대되는 살아있는 생명의 날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누군가 말했다. “지금까지 살 던 방식으로 얼마나 삶이 남았다고 이렇게 살 일이 아니다”라고. 그런 깨달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신새벽을 여는 새날은 지나간 과거와 다른 새날일 것이다.

매어달리듯이 사는 삶이 아니라 한 순간 한 순간 자유함으로 여는 신새벽의 차가운 냄새를 맛볼일이다. 언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한 평생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길이가 다르다.

한평생은 그 사람만의 길이와 깊이와 맛이 있고 그만이 아는 가치로 세상을 살다간다.
아무것도 서로 비교할 일 없이 견주지 않고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힘.

영원성을 담은 신새벽에 맞이하는 달과 별을 반가운 손님으로 만날 일이다. 무한하지 않은 생명으로 존재하지만 영원성을 만나고 신새벽의 순간에 서면, 달라진다. 새벽닭이 나보다 먼저 깨어나 외치는 소리의 부지런함에서도 배운다. 모든 생명이 존엄하며 동등하다는 이치가 마음과 몸에서 우러나오는 그 겸손함이 있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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