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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넘어지면서 일어섬을 배우다
   
▲ 유인봉 대표이사

어릴 적 한 때 별명이 약간 투박했다. 잘 넘어지고 잘 깨진다고“투가리”라는.
왜 그런지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이 잘 넘어졌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툭하면 넘어지다 보니  한 때 어머니께 잘 넘어진다고 혼도 났다.

자주 넘어지면서 깨달은 것은 넘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프다고 해봤자 누가 대신 아파주는 것도 아닌 것을 진즉에 알아버린 것이다.

서투르게 걸었던 탓에 무릎에 상처가 가시질 않았지만 부끄럽다는 것에서 벗어나 그것이 나중에는 달리기 선수로 잠시 뛴 경험도 주었다. 그리고 웬만한 아픔일랑 넘어가게 되었다.

시원치 않았던 다리는 이제 날마다 걷고 또 걸으며 그것이 삶의 즐거움이요 걷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적당하게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제 무릎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면서도 어린 아들 녀석이 연실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오히려 내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은 어른이지만 남편이 마치 아장아장 아기가 걷듯이 그렇게 훈련 중이다.
척추수술을 감당하고 난 뒤에 두발로 일어서는 것, 똑바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를 깊이 체험하고 있다.
넘어지지 않으면 좋지만 때로 잘 넘어지기도 한다. 지팡이를 여럿을 사 주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일어서는 데 힘과 마음을 쓴다.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리라. 삶의 불편과 장애를 가진 것이 삶을 다시 보게 하기도 하고 자신만을 위주로 생각하지 않게 한다. 세상을 찬찬히, 온전하게, 체험하고 깊이 이해하게 하기도 한다.

누워있거나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두발로 느끼는 세상은 총천연색의 세상이요 감격이다.
방금 전까지의 잿빛 우울함을 벗어던지게 하는 힘이다.

말 한마디라도 넘어지게 하는 말보다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게 하는 말을 할 일이다.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고 좁은 마음이 하늘로 활짝 열리는 그런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주며 살일이다.

단 한 번도 넘어져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나!
일어서서 그렇게 다시 시작하고 더 멋지게 살아낸 사람들의 불굴의 에너지가 생명을 살린다.

많은 생각이 넘어지고 깨지고 일어서고, 복잡한 마음이 넘어졌다가 다 비워진 상태로 가볍게 일어나고, 용서가 안 되는 일이 없는 세상으로 다시 서야 한다.  

모든 생명은 엎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섬의 역사를 이어간다. 부는 바람에 풀은 흔들리고 누웠는가 싶어도 다시 일어서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더불어 모든 생명은 생존의지를 통해 서로 함께 생성, 발전하고 소통하고 이어져야 한다.

곧게 하늘을 향해 곧게 일어서는 방향으로 가야하고 일어서는 순간의 감격으로 찬란해야 한다.
어느 날도 찬란하지 않은 날은 없다.
스스로 엎어지고 넘어져서 땅만 바라볼 때가 문제이다.

일어서서 또 부딪쳐보고 살아보는 거다.
눈물을 씻어주고 상대방의 수치심을 없애주며 세상에 아직도 생명과 사랑이 가득함을 나누며 일으켜주는 이가 되어보자.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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