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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칼날 위에서
   
▲ 유인봉 대표이사

“어린 엄마는 어땠을까?”  
이제 나이 30이 된 아들이 같이 일하다 돌아보면서 내게 물었다. 

장난끼가 심했던 어린 시절의 아들이 있고 이제는 성인이 된 아들이 있다.
키가 훌쩍 큰 마음으로 부모들이 걸어왔던 삶의 고비고비에 느꼈고 관심하고 사랑했던 일들에 대해 묻는다. 어쩌면 자신의 길을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인생이 시작되고 마감된다는 것은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며 이는 또한 다른 이들을 위한 꼭 필요한 밥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도 그렇고 의미 있는 타인들과도 자신들의 스토리를 얼마나 많이 공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일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엄마라하니 엄마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어요?라고 묻는 것보다 훨씬 다른 느낌이다?”
나도 나에게 스스로의 스토리를 묻고 있었다.

돌아보면 봄이면 들로 산으로 많이 나가다녔다. 나물도 캐러 다니고 여름이면 마을 개울가에 가서 미역 감고 넓적한 바우백이 빨래터에서 손수건이나 양말 등 빨래 한 두어 가지를 놀이삼아 해가지고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자연 속에서 부모님의 일을 돕는 것은 당연했다.

일이 우선이고 공부는 그 다음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형제들과 나누어서 소 플 뜯기고 밥하고 청소하고 때로는 쇠양간을 치우는 일까지 남 녀 나누지 않고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했었다. 대학생, 청년이 되어서도 한가하게 멋진 까페에서 커피를 마셔본 적은 단 한 번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밖으로 나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고 성실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살아온 이들이 어디 한 둘이랴! 도데체 절망이라는 덧없는 언어가 우리의 것은 아니었다. 안에 있는 것 보다는 밖에 있을 때 더 자유함을 만끽하며 웃고 떠들고 신나게 사는 잔칫집 분위기를 좋아했다.

어린 엄마와 지금의 어른 엄마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살다보니 마디도 생겨나고 어느새 독특한 스토리가 나온다. 두 아이들로부터  ‘옛날 엄마’ ‘지금 엄마’라는 말을 곧잘 듣곤 했다. 그 소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팥쥐엄마상도 있었겠다 싶다. 

이같은 모습의 옛날 엄마의 칼날 같은 날카로움의 모순덩어리는 옛날 엄마로 가고 그래도 다시 ‘지금 엄마’로 조금이라도 모진 돌맹이 모습이 물결에 닳아 동그라져가는 것이기를 기도한다.

사실 그렇게 기대하고 되고 싶었던 흔들림 없는 모습이 마흔 살이었는데 이를 넘자 마자 중대한 암을 경험하면서 산 고비를 넘고 난 것은 사실이다. 아직도 건강은 어떤가를 묻는 이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하루 하루 빌려서 산다’고 늘 말한다.놓는 것에도 더 단순하고 더 익숙하고 좋다고 얘기할 수 있어  고맙기도 하다.

그 시절,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보이는 엄마’와 ‘보이지 않는 엄마’ 스토리였다. 보이는 엄마의 시간이 있고 보이지 않는 엄마의 시간이 있다고. 초원의 집은 세월이 가면 낡아 없어질지라도 초원은 그대로라고. 

‘어린 엄마’를 거쳐 ‘어른 엄마’가 되어가는 길을 미리 안다면 아마 그 길을 많이 안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살아볼수록 엄마라는 직업은 끝없는 배움의 세계였고 진행형이다. 미래는 몰라서 용감하게 또 살아가는 것일지도.
산다는 것도 대여섯 번을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과정을 거치며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아닌가!

남편에게 “이제 당신은 다섯 번째 마누라와 산다”고 하면서 “어떠신가?”를 묻는다. 남편은 “그래도 세 번째 쯤의 마누라가 좋았다”고 웃는다.

앞으로 몇 번째 엄마와 몇 번째 마누라로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늘 다시 새로운 엄마상과 마누라 모습으로 진화해나가기를 스스로 빈다. 여성으로 태어난 감성으로 온 세상을 감각하고 살 수 있어서 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남이 안 보이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한 단계를 스스로 청산하고 닫고 돌아서면 다시 새 학년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

삶은 누구에게나 경계의 칼날 위에서 사는 것임을 가르쳐준다. 그 경계를 과감하게 넘고 혁신해가야하기도 하고  때로 누군가는 칼날위의 고단한 삶을 던지는 일도 있다.

누군들 칼날위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무섭게 번뜩이고 빛나는 칼날의 날카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칼날위에 올라서고 그 위에서 주어진 삶을 누려가는 거다.

자신과 집안을 넘어 나라를 잃어버렸던 시간, 겨누어진 총과 칼날 앞에 분연히 일어섰던 선열들이 가졌던 용기로 3월의 하늘아래 못 할 일도 없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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