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대표이사

요즈음 이른 아침마다 두 달째 북성산 한 자락에 위치한 장릉을 다녀오고 있다. 수려한 소나무의 모습을 보러 가도 참 좋은 곳이다. 크고 작은 호수가 둘이 있는지라 그 또한 일품이다.

요즘 예년에 비해 많은 연꽃이 피었다고 관리인이 놀라워했다. 매년 열 송이도 안 피던 연꽃이 연이어 피어나는데 10년만인지 20년 만인지 그렇단다.

올해 유난히 더워 폭염에 시달리고 습하고 물도 부족하니 연꽃은 더 화려하고 활짝 피어 아침안개속에 단연 빛난다.
사람도 악조건 속에 어려울수록 더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피어나는 이가 있다. 

연꽃은 풍성한 환경보다는 질척하고 습한 곳에 피어나 정화한다니 햇빛받은 연꽃과 웃음을 주고 받으며 장릉 안을 세 바퀴 정도 돌면 정말 많은 땀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개인적으로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여기는 곳이 재실로 불리는 한옥이 있는 곳이다.
그 곳에 서면 어릴 적 고향집이 많이 연상된다. 너른 마당이 있고 대문밖의 바깥마당이 있는 모습이 그렇다.

왜 그런지 그곳에 가면 정서적으로 어릴적이 연상되어서 그런지 편안하고 안정이 된다. 그 마루에 잠시 앉아 땀을 좀 식히고 일어서는 맛과 뒤 뜰 안을 걸어보는 것은 그야말로 최상의 행복감을 준다.

어릴 적 마당을 쓸면서 왜 이리 마당이 큰가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가보니 그렇게 큰 곳은 아니었던 기억이 그곳에서 같이 공유된다. 장릉과는 인연이 있다. 처음 대학생일 때 수련회의 장소로 한 번 와 본 인연이 있다.

장릉에서 수련회를 하고 나서 김포가 고향인 이가 자신의 집이 가까우니 잠시 들렸다 가자고 해서 일행이 모두 그의 고향집으로 갔던 일이 있다.

마침 팔월 한가위를 앞두고 송편을 만들던 가족에게 인사를 나눈 뒤 여러 해가 지나보니 나도 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송편도 빚고 아들 딸을 낳고 사는 김포사람이 되어 있었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러니 한 번의 인연일지라도 백년의 인연으로 이어질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90년대 초부터 질박한 여성들의 삶이 나를 포함해 더 나은 삶이어야 한다고 이모저모 노력하고자 했던 시절에 아이들과 함께 동화를 읽고 그 장릉에서 가족들이 행사를 많이도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 학교를 다니며 그리로 소풍을 많이 갔다. 그러고 보니 장릉은 우리들의 삶의 동산이기도 했고 오래된 왕조의 품위와 전통, 그리고 어제의 추억과 오늘의 행보에 맞닿아 있다.

장릉을 걷다보면 그 큰 두 봉우리의 무덤이 보인다. 그리고 오늘을 한가롭게 헤엄치는 천둥오리들의 향유하는 여유로움과 물질하는 자유를 그림같이 마주 대한다.

그 두 장면은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고요와 맞닿아 있고 잠시까지 현재에 목매어 있던 자신을 깨운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더 나은 미래, 더 행복한 삶을 찾아 여행하려고 한다.

더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노력과 방법, 더 나은 노후를 잘 즐기며 사는 방법이나 아이들을 더 자유롭고 현명하게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어제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자신과의 관계회복에서가 아닌가 한다.

누군가에게도 시작점이라는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쉰 여덟살 생일날, 선물처럼 다시 장릉 안으로 걸어가 홀로 걸었다. 그리고 남편을 안내하니 그토록 걷기 어려워하던 이가 맨발로 그곳을 걷는다. 처음엔 무심하게 바라보던 이들이 너무 잘 걷는다고 말을 건넨다. 하루하루 그것은 관계회복이 되지 않을까!

스물 한 살에 본 장릉의 푸르스름한 잔디빛 희망이 서른 살 어미가 되어서는 아이들을 잘 기르고 싶었던 여성공동체로 이어졌고 삶이 되었다. 여성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그렸던 ‘미래의 희망 한 컷’도 그곳에 있다. 그것이 어우러져 오늘이 되고 어제에 이어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장릉 안 여러 나무들은 큰 구멍들을 안고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우리의 인생도 얼마나 많은 작고 큰 상처와 구멍들이 존재하는지. 정신적 공허함과 행복감의 결여에 시달리는 삶을 살면서 간과한 행복은 늘 어제에 있었고 우리 근처에 있다. 

우리보다 먼저 오늘을 살아간 이들이 남긴 정신적 유산이난 우리 자신의 유산을 우리는 너무 간과한다. 그래서 홀로 외돌아 앉은 가난한 슬픔에 잠기는 지도 모른다.

더 나은 미래, 더 행복한 삶을 여행하면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곳이 “어제의 서계”란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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