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요즘 우리 곁에 하얀 차 트랙스가 왔다.
앞으로 60개월을 성실하게 납부해야할 의무가 우뚝하니 우리 앞에 서 있고 그 때까지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 하자고 말했다.

온전한 할부로 구입한 차이지만 10년 이상을 우리곁에서 발이 되어 주었던 로체를 보낼 땐 여간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아 사람과 헤어지듯 그렇게 마음이 애잔했다.

중고차를 가지러 온다는 중개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침 내내 로체를 타고 다니며 일을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혹은 무엇과 만남과 헤어짐을 갖는다.

생각해보면 여러 대의 차와 인연이 되고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준 것이 고맙다. 
처음 우리 집에 온 차 이름은 프레스토라는 다소 오래된 중고차였다. 운전 면허를 따자 마자 그 이튿날로 남편은 비오는 날 프레스토를 타고 낮의 운전경험 밤의 운전경험을 익히고는 했다.

전세 들어 있는 주택 앞에 주차한 우리집 프레스토를 바라보는 이웃집 아저씨의 시선은 무시 그 자체였다. “이런 똥차는 줘도 안 탄다”고 내 면전에서 쥐어박는 소리를 했다.

지금 같으면 어떨까 몰라도 그때는 그 소리를 그냥 듣고만 있었다. 
아직 까지 그 소리가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면 조금 분했던 것은 틀림 없었나보다.  

스텔라라는 차를 친정오라버니가 내게 보내주었을 때도 중고차였다.
사나흘 후에 차가 안보여 남편에게 물어보니 다른 이가 더 필요한 것 같아 아예 보험까지 내어서 잘 건네주었다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 것이라고 우기지는 않았지만 다소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그렇게 주고 싶었고 주려면 차만 주면 되지 왜 보험까지 들어서 줄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은행잎의 마티즈를 만났고 열심히 신문을 만들고 실어 나르며 나와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타다보니 주인 없는 차처럼 보살펴지지 않은 채 그렇게 우리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암을 수술할 때 탔던 차는 슬퍼서 이름도 잊었다. 나는 이제 못탈 지도 모르니 직원들에게 타라고 했는데 수술하고 돌아왔을 때 그 청색차는 폐차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타지 않았던 그 차는 너무 많은 위반 딱지가 붙은 채 지불되지 않아 폐차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고 그 수년동안의 억울한 딱지 값을 몽땅 물어야 했다. 그때 그것이 나의 죽음을 대신하여 지불하는 값인가 하여 말없이 무덤하나 만들어 뚜껑을 덮었다 생각하고 다 물었다.

그 슬프고 아팠던 시절의 차 이름은 나의 아픔과 함께 장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세라토를 만났을 2천년 대 초반 암과 죽을지 살지 모르는 경계선 앞에서 세라토는 그 시절의 나를 고립되게 하지 않고 세상으로 실어 날라다 주는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는 두려움과 아픔, 그리고 혼자 씩씩하게 암센터를 다니며 차 속에서 웃고 차 속에서 울며 스스로의 마음을 살리고 지키던 것은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였다. 

로체는 그 이후의 삶을 강산이 변할 만큼 지켜준 차였다. 하얀 트라제는 네가족을 실어나르며 위안을 주었고 이제는 녹이 쓸만큼 헐었지만 고난의 시간을 함께 영위해 준 고마운 벗이야말로‘로체’이며 은색 투산이 로체와 나란히 우리를 실어날아주는 멋진 준마다.

물론 누군가 10년을 타고 우리 집에 온 13년 이상 된 베라크루즈는 아직도 건재하게 우리 곁에 있다. 오래된 차도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이 있고 새 차와 만나도 사귀고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게 또다른 생의 파트너중의 하나인 차와 사귐도 그렇다. 중고는 중고라서 좋고 새차는 또 새역사를 같이 시작할 수 있어 신선하다.

때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데려다 주는 고마움과 씩씩함의 두 다리 이상으로 고마울 때가 있다. 차와 나누는 이야기도 있고 온전한 나와의 집중과 몰입으로 결단을 내리는 일도, 때로는 차속에서의 명상일 때가 있다.

떠남과 만남, 그리고 새로운 기대감의 여행도 우리는 차와 같이 할 때이다. 
때로 차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이며 작은 집이 되기도 하고 그 차안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온갖 것들이 담겨 있기도 하다.  

누구나 차를 필요로 하고 차를 통하지 않고 두 다리로만 살 수 있지는 않다.
때로는 그가 무슨 차를 타느냐로 그사람의 면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차를 구입할 때 그 사장님이 말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벤츠가 되었던 BMW가 되었던 대부분 할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차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소모품이거든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항상 있을 것 같고 살 것만 같았던 사람들과 그 무엇과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다는 것, 
한 시절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차를 필요로 했고 그 차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어딘가를 오고 갔고 때로는 목표를 이루는 가장 듬직한 파트너였다.
시절을 따라 우리에게 왔고 우리의 인생과 함께 달렸던 차를 생각하니 참 여러 이름으로 다가왔었음을 고마움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삶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작은 인연, 혹은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엮어져 간다.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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