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봉 주)미래신문 대표이사

하얀 안개가 가득한 가운데 인간의 세상은 보이지 않고 산과 구름과 장대지위에 떠오르는 아침 해가 장엄함을 준다.
구름위에 둥글둥글 산 봉우리들이 자태를 들어내면 하얀 물감을 두른 청산들이 나래비를 선 모습이다.

문수산 동측 최정상부 376미터를 오르면 동서남북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물과 산과 강을 모두 볼 수 있어 더 없는 산이다. 서해와 강화, 인천, 파주 등을 한눈에 살필 수 있거니와 북한산이나 강화의 명산 마니산이나 이웃하여 바라볼 수 있어 더욱 아침기운과 더불어 훌륭하다.

요즘 장대지 복원 후 더 자주 하여간 일주일에 두 어번 이상 문수산을 찾는다.
이곳 장대지에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치열한 결전을 치른 국방유적이기도 하다.

숙종 20년 축조한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훨씬 이전 삼국시대 축조 성곽이 발견되기도 한 곳이다. 서해를 거쳐 염하강을 따라 올라가는 배와 대동강과 예성강을 따라 평양 개성 등지에서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뱃길이었음을 상상하면서 나라를 지켜낸 그 옛 선인들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성지, 호국의 산성에 두발을 딛고 서 있음에 감사한다.

날아갈 듯 단청을 두른 처마를 가진 장대지 정자의 댓돌에 신발을 벗어놓고 마루에 오르면 마치 용상에 오른 왕 같은 품위를 스스로 갖는다.

장대지위에서 맞는 아침기운과 신선한 바람은 산에 오른 자가 누리는 축복이다.
자연, 그 절경을 멀리 찾을 일 없이 늘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신비를 두 눈도 감사하고 마음도 흡족하다.

인간사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오르다보면 내뱉는 숨으로 걱정 근심은 다 나와 버려 더 이상 큰 짐이라 느껴지지 않게 된다.
우리의 선조들이 더 이상 이 땅에 범접할 수 없도록 사수하고 지켜낸 거룩한 산성이라 여기는 순간 우리들의 삶의 자리는 숙연하고 정숙함을 되찾는다고 할까!

누군가 말했다.
강화 마니산은 역사야 어쨌든 임금이 머물던 도성을 가졌던 것이지만 우리의 문수산은 서울을 사수할 마지막 역사적 전투의 진지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 내가 선 이 곳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장수가 서서 북을 치며 후퇴없이 사수할 조국을 위해 진군을 외쳤을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도도하게 지켜낸 소중한 우리의 땅 우리의 역사의 물결에 하나가 된다.

한 방울의 물도 물이다. 바닷물도 물이다.
높은 산도 낮은 산도 품격이 있다. 

행여 바닷물에 기가 눌려 가진 것, 배운 것, 없다고 가슴 낮추고 사는 이들은 한 번 만 가슴을 열고 산에 오르면 죽었던 기운이 다시 싹이 나고 잎이 돋아나고 마침내 꽃피는 날이 올 것이다. 

한 없이 작아지는 마음의 한 방울의 인생 같은 민초들은 그 큰 바닷물결도 한 방울의 물이 모이고 섞여서 이루어지고 흘러감을 잊지 말일이다.

우리들의 삶의 정성과 믿음, 한결 같음들이 자연과 더불어 이 땅의 한 호흡을 이끌어온 힘이다.
문수산에서 바라보는 동서남북의 절경은 일출만큼이나 일몰도 아름답다.

일몰이후 한없는 빛으로 반짝이는 빛의 물결과 달리 북녘은 초저녁부터 소등한 밤중이라 더 대별된다.
빛으로 단군의 조선을 깨어나서 환희가 되게 할 일이 눈앞에 보인다면 너무 많이 나간 것일까? 꽃피는 5월의 마지막 날에 6월의 역사의 아픔을 기억한다.

6.25가 나던 날 그랬단다. 검은 구름이 밀려오고 콩닥콩닥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총소리였는지 모르고 평화롭게 밭일 논일을 하다가 당한 일이었다고.

언제나 누군가는 먼저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그리고 서서히 아침햇살처럼 퍼져나가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세대는 가고 한 세대가 오나니’

그 아픈 시절을 몸소 경험하고 아내를 잃으셨던 나의 아버지, 남편이 행방불명이 되었던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6.25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었던 부부였다.

6남매를 다 짝을 채워주시고 그렇게 하늘이 부르실 때 미처 호강도 다 못하고 가셨던 그 원한과 고통의 세월, 어릴 때 그때는 6.25가 책에만 나오는 역사인줄만 알았다고 할까.

오늘 문수산성에서 바라보는 굽이치는 강물과 산천의 역사는 나와 그래서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분이면 북녘에 닿을 수 있는 김포에 살고 있다면 먼 나라 사람들은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고 하더란다.

그래, 그래도 우리는 김포 문수산의 사계를 다 줄줄이 가슴에 느끼고 흠양하며 산다.
평화는 그렇게 우리가슴에서 자라 남북을 하나로 열고 마침내 온천지가 환한 축제의 불꽃같은 그림을 만들어낼 날이 곧 오리라고 믿는다.

문수산 장대지의 날렵한 처마를 보면 결코 무겁지 않다. 날아갈 듯 버선코처럼 유쾌한 몸짓으로 그렇게 서있으니 날마다 올라 그 장엄한 나날의 감동을 직접 안아보면 알 것이다.

긴 세월 무너졌던 성곽이 제 얼굴을 찾고 건강하게 서 있듯이 우리들의 지난한 상처와 아픔들도 깨어진 세월도 반드시 복원되고 천국을 누릴 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유인봉 대표이사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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