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을 담았던 김포의 들녘 이곳 저곳, 논이 비어가고 있다. 논은 그 빈 곳에 찬 서리와 흰 눈을 담으며 긴 휴식을 가질 것이다. 우리의 주식인 쌀을 담아내던 논, 오늘따라 그 논에 대한 염려가 각별해진다. 왜냐하면 올해부터 정부에서 추곡 수매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논은 쌀이 자라기에 가장 좋은 환경적 구조를 가진다. 논 농사는 밭농사에 비해 비료나 농약을 많이 치지 않아도 되는 태생적 특징이 있다. 왜냐하면 논에는 환원층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흙의 층이 있기 때문이다. 논의 구조를 잘 살펴보면, 제일 위에 물이 있고, 그 아래로 얇은 갈색 흙의 산화층이 있고, 그 아래로 녹색이 감도는 두꺼운 환원층이 존재한다.

이 환원층에는 산소의 공급이 잘 닿지 않기 때문에 산소 없이도 생존이 가능한 혐기성 세균이 살고 있다. 혐기성 세균의 번식 때문에 환원층은 산성도가 낮다. 또한, 산성에는 잘 용해되지 않는 인산철이 철 이온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철 성분이 벼에 잘 흡수되도록 도와 준다. 그리고 유기물을 천천히 분해시켜, 벼에 유기물을 조금씩 스며들도록 도와 준다. 이러한 논에 쌀 농사를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벼베기가 끝난 후 물이 빠지게 되면 이번에는 산화층이 두터워진다. 이 산화층에 여러 가지 잡풀이 자라게 되고, 이들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한다. 이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받아들여 흙에 질소 성분이 풍부하도록 도와준다. 이듬해 벼가 자랄 때 필요한 풍부한 질소는 나중에 단백질이 되어 우리 입으로 들어올 것이다.

논에는 또 다른 이용법이 있다. 탁한 흙탕물을 이용하여 미꾸라지나 게, 메기 등을 기를 수 있다. 이들의 배설물은 유기 비료가 되고, 또한 이들이 흙탕물을 헤집고 다니면 벼뿌리에 산소나 영양분이 잘 공급되도록 한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겨울 동안에도 논의 한 구석에 흙탕물을 가두어 두어 미꾸라지들이 겨울을 나게 했다.

논두렁에는 콩을 심는다. 콩은 예로부터 ‘밭에서 나는 고기’라 불릴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한 식물이다. 식물성 단백질에는 많은 필수 아미노산 즉, 리진이나 알기닌 등이 들어있다. 논두렁에 지천으로 열린 콩을 모래 서리하여 불에 구워먹고 시커멓게 된 입술로 들녘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또 콩은 논농사가 잘 되지 않아 흉년이 되었을 때 배고픔을 달래 주기도 했던 고마운 식물이기도 했다.

이제 쌀 개방이 점점 확대되고, 쌀 농사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논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 조상의 특별한 지혜가 녹아 있고, 우리 어릴 적의 추억이 배여 있는 논의 모습을 보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이러한 논의 의미를 지킬 지혜가 과연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

손영운  shonj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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