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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갔다’ 얄팍한 정치인

‘自誠明性, 自明誠敎’라는 말이 있다. 지극함으로부터 밝아지는 것이 性이요, 그 밝아진 바탕을 성실히 하는 것이 敎라는 풀이가 될 것이다.

부모노릇을 배우고 태어난 이는 없어도 부모노릇을 극진히 하면 족히 부모노릇을 할 수 있으며 그 性을 인간은 이미 부여받았다는 뜻으로 요약한다.

이런 시각으로 요즘의 김포시를 바라본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시민이건 공직자건 김포에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남의 탓에 급급할 뿐이다.

시민은 의원과 시장을, 의원과 시장은 정부를, 정부는 국방부를 탓한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듯이 국방부가 총대를 맨 사안에 김포시장이 고작 한 시간 피켓시위를 한다고 될 일 있겠는가. 아마도 시장과 의원이 단식투쟁하다가 굶어죽어야 김포시의 말을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할 것이다.

얄팍한 김포 정치판의 인적기반과 일천한 경력, 그리고 밑바닥 보이는 도덕심과 진지성으로 의원과 시장이 되었다고 해도 ‘남의 탓’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이들에게 있다.

선출직이기 때문에 그렇하다. 선출직이란 사실상 권한보다는 의무가 더욱 큰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시민이 부여한 의무는 방기하면서 달콤한 권한만 행사하고 있다.

그것도 ‘사퇴 압박’을 모면하거나 재선을 도모하는 지극히 개인적 이기(利己)에 초점이 맞춰진 듯이 보인다. 일차방정식 해결능력이 없는데 미적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그릇 됨됨이를 장애인 인권문제를 통해서, 김포변전소 문제를 통해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장애인 복지라는 표현을 피한 까닭은 김포시 거주 장애인 문제는 이미 복지가 아닌 인권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포시 거주 장애인들도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들에게도 헌법에서 보장한 교육의 권리와 평등의 권리가 있다. 개인성(individuality)으로 볼 때 인간은 그의 특수성을 초월하여 모든 시간과 존재를 보편적 사고의 한 순간으로 바라보게 되는 정도에 따라서 그의 진정한 자아와 본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헤겔주의적 방식으로 장애인 개인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미 우리는 이런 방식의 논리적 저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장애인이라는 개념이나 본질을 이야기 할 때 마지막 은신처이자 신앙적 차원의 아성이 ‘예산없음’에의 도피를 충분히 간파하고 있다.

개인을 보편속으로 침잠시키는 것은 개인의 책임과 권리 그리고 진정한 실존으로써의 인간을 배척하는 것이다. 사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대안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자기참여를 통한 자기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지지한다는 것은 개인성(individuality)을 위하여 보편성(universality)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개인성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이 물음은 개인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자명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건강과 교육이다.
“김포시에는 김포의 많은 정치인과 정치지망생들이 왔다갔다만 했던 장애인주간보호센터만 있는데 정원이 20명 뿐이다” “김포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만이라도 교육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느 장애우 부모의 한마디는 사태를 집약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 표현은 10살짜리 내 자식이 김포에서 훈민정음을 한 시간 만이라도 배울 수 있게 해 달라는 말보다 심각하다. 실태를 열거하기 부끄럽다. 국민소득 만달러시대에 천달러도 못미치는 수준의 것이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가. ‘왔다갔다’만 했던 부류와 시민, 사회단체, 당사자 모두의 책임이다. ‘예산없음’이라는 메시아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혐의를 두는 것조차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인생중에 가장 서글픈 것이 환ㆍ과ㆍ고ㆍ독이다. 사회적 약자를 구휼함에 태만하면서 관작을 유지하는 것은 탐관오리의 전형이다.
또다른 사안으로써 김포변전소 문제를 들 수 있다.
이미 지난해 3명의 주민 구속과 수많은 주민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었던 이 사안은 ‘왔다갔다’만 했던 부류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사실 왔다갔다만 한 것이 아니라 선거공약까지 했다.
당시 유정복 한나라당 후보는 선거운동 종료시간 직전의 황금시간을 무려 3시간씩이나 해당지역에서 소모했다.
“유정복 똑똑하고 능력있다” “시장재직시 한전에게 속아서 허가를 내주었다” “결자해지 하겠다”. 그는 결국 3천표 차이로 의원에 당선됐다.

능력있는 사람이 불과 수삼년 앞을 내다보지 못했는가, 그렇게 똑똑한 행정가 출신이 왜 한전에게 속았다고 변명하는가. 혹시 배후에 말 못할 무엇이 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상충되는 언표들의 참람된 극치는 결자해지 하겠다고 무려 3시간씩이나 외쳐놓고 당선 이후에는 주민투표로 해결하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결자해지의 주체는 유정복의원 자신이고 주민투표의 주체는 주민이다. 내가 해결한다고 약속하고 네가 해결하라는 것이다.
교묘한 논리적 오류가 아니라 노골적인 회피이며 지나치게 저속한 등급이다. 형식놀리학이나 수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저잣거리에서는 이러한 언표를 헛소리, 배신, 파렴치라고 표현함을 보아왔다.

김동식 시장 역시 같은 등속 아닌가.
요즈음 김포변전소 부지에는 또다시 구속과 부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형식요건으로써의 타협 이면에는 반대주민 지도부의 구속각오가 변함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과 의원은 가엽게도 자신의 약속을 집어삼키고 있다.
아마도 自誠明性이라는 말은 이런 부류에게는 오직 표 관리의 경구로만 들릴 것이다.
이 또한 탐관오리의 전형이다.

지난 8월2일 필자는 김동식 시장과 동석한 자리에서 위의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역이기주의 때문에 전국적으로 배척되어왔던 장애인 종합복지관을 현 변전소부지에 유치하겠다는 방안이다.

악화일로를 치닫는 지금 또다시 이 방안을 권고한다.
인근 주민의 변전소건설 반대이유는 허가과정의 불합리나 주거밀집지역에 건설하는 타당성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명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그 가혹한 고문을 견뎌냈던 김근태 장관은 역대 장관들처럼 차마 수돗물 마시는 행사는 하지 못할 것이다.
전자파 문제는 수돗물같은 명약관하한 애매함에 걸려있다.
아마도 ‘왔다갔다’만 했던 부류는 장애인 인권문제와 변전소건설로 인한 생명의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폄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기만을 동원해 빠져나갈 궁리만 해야 할 사안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사소함(?)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김포가 되는 일 없는 직ㆍ간접적 근거이며 김포정치판의 인적ㆍ질적 수준을 자리매김하는 척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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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주  soojoo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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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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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2 2004-08-23 20:43:20

    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전체가 변화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작은 것부터,
    더불어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도롣 합시다.   삭제

    • 시민 2004-08-21 14:30:47

      올바른 지적입니다. 누구도 정치적 표계산 이상의 태도 보여주지 못하는 현실 참 안타깝습니다.

      정친인들이 자기 피해갈 궁리 차원의 해법을 잘 지거해 주셨군요. 장애인복지관도 그런 면에서 보면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는 훌륭한 대안일듯 싶습니다.
      뜻하신 바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빕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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