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그 때 비가 오면 물이 불어나서 서로서로 손을 잡고 건너야 학교를 갈 수 있었잖아. 그래도 그 때 얼마나 즐거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너무 좋잖아. 우리 오래오래 살자”

마치 방학을 끝낸 초등학생들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듯 수다를 풀어놓는 아줌마들. 아니 아줌마라고 하기에는 세월을 훌쩍 넘겨버린 할머니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될 즈음에 인천서곶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생이니 알고 지낸 것만 60년이 넘었다.

이런 이들이 결혼 후 수십년을 잊고 살다가 할머니가 되어 다시 만났다.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어렵사리 모이기 시작했는데 많은 때는 10명, 적을 때는 4명이 모여 여행도 다니고 수다도 떤다.

처음에는 생전 다니지 않던 커피숍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커피를 리필해주는 것에 미안해할 만큼 세상물정 모르는(?) 할머니들이었는데 만남이 깊어질수록 집도 버리고 훌훌 기차여행을 떠나는 신세대 할머니들이 됐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무박기차여행을 떠나는데 지난번에는 여수를 다녀왔다. 가족사와 세상사로 바쁘기만 했던 할머니들이 어느새 세상속의 주인공으로 태어났다. 

며칠 전에는 찜통 무더위 속에서 강화도를 찾았다. 강화도가 볼게 뭐 그리 많겠나마는 그저 함께 차를 타고 늘어놓는 수다가 재미다. 이날 모임에는 홍종련(71세. 부천거주), 홍순금(71세. 인천거주), 이순재(71세. 인천거주), 정계춘(72세. 대곶거주) 할머니 네 분이 참석했다.

“키만 조금 컸으면 정말 좋은 데로 시집갔을 텐데 시골로 시집와서 고생했다”는 남편의 흉 아닌 흉을 늘어놓자 다른 친구들이 “그래도 얼마나 행복하냐?”며 되받아 웃음꽃이 핀다.

이렇게 남편 흉도 보고 추억을 얘기하면서 이들은 어느새 초등생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결혼을 안한다는 얘기며, 누구네 둘째가 분가를 했다가 다시 들어왔다는 얘기며, 큰아들은 친절하고 상냥한데 둘째 아들은 무뚝뚝하다는 얘기, 누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까지 쏟아놓아도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이러다보니 두 달에 한번씩 만나던 모임도 어느새 시간이 너무 멀게 느껴져, 이제는 한달에 한번씩 만나잔다. 가족도 남편도 하루씩은 잊고 훌쩍 떠나잖다.

“살아보니까 다 똑 같아. 돈이 아무리 많아봐야 세상을 다 살 수도 없고, 아무리 없어봐야 세끼 밥 먹기는 똑 같잖아” “맞아 맞아.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건강만으로도 우린 행복해. 아이들도 다 키우고 이정도면 성공한거 아니니. 우리 더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할머니들.

누가 할머니들의 삶을 희망 없는 삶이라고 했을까? 이 순간 10대 동심으로 돌아간 할머니들의 삶만큼은 각박한 시대를 경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보다도 더 희망적이지 않은가!

심재식 기자  js@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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