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의 죽음과 이라크파병

애통한 일이다. 김선일씨가 이라크에 돈벌기위해 나갔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사람들은 말을 잃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각계의 애도와 분노의 물결이 또다시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금은 애도만이 있을 뿐 책임따지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속속 드러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고요히 묵념만 올리고 있는 것도 ‘한가한’ 직무유기다.

현지교민들에 의하면 김선일씨의 납치사건은 5월 30일경에 일어났고, 현지 교민이 인근 카타르대사관에 신고하여 이미 한국정부가 알고 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정부는 파병방침을 확정하여 발표하였고, 이 발표를 본 무장세력이 김선일씨를 살해하겠다는 협박통지를 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파병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결론은 김선일씨의 사망이 되었다.

만일 이같은 일련의 추정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한국정부는 엄청난 도덕성시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국회에 대한 보고석상에서 국방부가 김선일씨의 사망이후의 대책까지 보고하려 하자 의원들이 크게 질책하여 보고가 유보된 사건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김선일이 빨리 사망하는 것이 파병일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인사들이 정부내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그도 아니면 정부내 의사소통시스템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관점을 바꿔보자. 노무현대통령은 스스로를 미국적 자유주의를 옹호한다고 한다. 집단의 생각이나 이익보다 개인의 생각이나 이익을 중시한다고 하는 것이 개인주의적 리버럴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대통령도 대한민국의 안보도 중요하지만 김선일이라는 구체적인 한 개인의 생명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미국이 ‘라이언일병구하기’에서 보여주듯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여러명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줄 알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그들의 자유주의를 동경한다는 대통령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합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미동맹의 강화는 대통령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이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놈의 한미동맹은 1인당국민소득 100달러이하일 때인 수십년전이나 ,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지금이나 왜 그리 달라지는 것은 없는가.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고 온 국민이 생각했던 시대나, 대다수의 국민이 파병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지금이나 굴종적 한미관계는 자국민한명 보호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한 동맹이어야 하는가.

테러집단에 굴복할수 없다는 정부의 방침은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사나 윤봉길의사에게 테러분자라고 덧씌웠던 일제의 논리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우리의 관점에선 김선일씨가 힘없는 민간인이지만 저항세력들에게는 미군군속으로서 점령군의 하수인으로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래 좋다. 모두 정부의 논리를 이해한다고 치자. 그러면 도대체 김선일씨의 주검앞에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저항세력과 우리정부와 미국과, 파병을 막지 못한 우리국민 모두가 책임있다고 하자. 그 논리는 아무도 책임없으니 그저 애도나 하고 묵념이나 올리자는 패배주의외에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누군가 책임진다고 김선일씨가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사망과정에서 ‘라이언일병구하기’와 같은 국가의 적극적인 자국민보호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할수 있는 정부의 도덕적 신뢰기반의 붕괴를 의미한다. 더구나 긴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파병원칙 변함없다’는, 일종의 살인방조선언만 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무현정부와 정치권은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파병이라는 결론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국민보호라는 기준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 필요하면 정부의 체면이 다소 구겨지더라도 자국민 한사람의 보호를 위해 정부가 할수 있는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어야 했다.

이제 정부는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여 개혁의 길로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벌써 열린우리당과 노사모등 자신의 지지기반에서 광범위한 저항과 이탈현상이 생기고 있다. 노무현정권과 우리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대계를 위한 개혁의 동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노무현정권은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의견을 경청해야 할 때다. 파병철회에 담긴 국민의 뜻을 인식하고 그에 순응할 때, 김선일씨의 죽음이 그나마 헛되되 않을 것이며, 향후의 더 큰 불행을 막을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야만적 국익보다 보편적 인류가치를 통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 멀리내다보는 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석수 pwk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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