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인 봉
김포여성의 전화(준) 공동위원장

자연을 비롯한 우리들의 외적 환경이라는 것이 우리들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닐까?이러 저러한 인생살이의 한 면에는 오로지 나 혼자서의 인연으로서는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나와는 별개였던 사건이 나의 가슴 한 가운데 들어와서 정신과 마음을 흔들어 놓고 인생을 다르게 살도록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재미교포 3세 이면서 심리학과 춤을 전공한 대학교수로 춤으로 정신대의 기막히고 처절한 상황을 춤 형상화 해낸 여성을 만났다. 그가 7 분 여 동안 춘 춤을 그의 설명과 함께 비디오로 보면서 가슴으로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말대로 “기차의 하찮은 연기처럼 그렇게 사라진 정신대의 여성들”이 갑자기 가슴으로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도 그 시대의 딸이었다면!
우리 회원들도 울었다. 아마 회원들 중에는 처음으로 정신대가 우리와 하나였음을 깨닫는 이도 있었으리라. 그 시대와 우리는 전혀 다른 세월을 살고 있었는데, 우리들의 살과 피 속으로 스멀스멀 무엇인가 들어오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 과거의 역사가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 하나로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한국사, 그 중에서도 여성의 역사와 전쟁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보았다.

트리나 남미조란 사람도 분명히 한국의 여느 여성과 다를 것 없이 뒤로 질끈 묶어 맨 머리에 별 다름없지만 전혀 미국인으로 살다가 그는 정신대를 만나고, 한국을 더 깊이 만나고 또 한번 인생이 변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오늘 김포의 들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던 우리 여성회원들은 그이의 춤을 통해서 피울음을 토했던 저 역사 너머의 소리 없는 그들을 만났다. 넋이라도 있고 없고, 혹은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우리는 가끔은 이 땅의 정치사나 역사, 또는 이 지역의 어떤 일들이 나와는 다른 일이 될 수 없다는 역사 인식을 하면서도 정말 잊고 산다. 또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동체로 함께 사는 세상에서 우리와 별개인 것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웃음이나 눈물이나 다 우리들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적인 것이다.
또는 역사적인 것이다. 역사적인 부채를 우리가 모른척 하는 한 우리를 비롯한 우리의 아들 딸들은 몽땅 그 빚더미를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6·25를 경험한 사람들의 눈물, 80년 광주를 온 몸으로 겪은 사람들, 그리고 1MF를 겪으며 자신의 서러움이 눈물이 되어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이 한 시대를 살면서 어떤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지역에서 2001년 여성의 삶은 어떤 그림이고, 앞으로 어떤 그림으로 변해야 할 지를 고민하는 모든 여성과 남성은 자매요, 형제이다.

우리 회원들 중 남성회원들이 꽤 있다는 것은 참 즐겁고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지금껏 살아왔던 가부장적이거나 건강하지 못한 생활 방식 누군가를 딛고서 힘들게 하고 누린 행복들을 반납할 수 있는 마음자세로 바뀐다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약자의 편이 되고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해석할 수 있다면 그가 젊든지 아니든지 무슨 상관인가?
<제108호 6면/2001.6.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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