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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만난 갈색 눈의 여비서한익수 RBPS경영연구소 소장
   
▲ 한익수 RBPS경영연구소 소장

필자는1997년 한 겨울, 구 소련에 속해 있던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로 가게 된다. 그 당시 대우자동차가 세계경영의 일환으로 그 나라와 합작 자동차회사를 설립하게 되면서 그곳 공장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가족들을 뒤로하고 아직 공산주의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동구권, 인천공항을 이륙한지9시간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 도착, 거기서 다시 야간 열차를 타고 15시간을 달려 간 곳이 회사가 위치한 자포로지라는 지방 도시였다.

도착한 다음 날 현장을 한번 돌아 보았다. 백만평이나 되는 부지 위에60여 년이 지난 낡은 건물들,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오랫동안 공장을 사용하지 않아 대부분의 설비들은 녹이 나 있었다.

영하 25도가 넘는 스산한 공장 내에는 개들만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 이제 이곳에 새로운 설비를 갖추어 자동차를 생산하여 동유럽에 성공적으로 수출하도록 하는 것이 그곳에 파견된 우리들의 임무였다.

외국에서 일할 때 두려움으로 다가 오는 것은 언어소통 문제이다. 더구나 이 곳에서는 영어마저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그곳에 간지 3개월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현지 중역의 환갑잔치 행사에 축사 부탁을 받았다.

그들은 생일이 되면 회사에서 행사를 크게 한다. 특별히 환갑잔치에는 전통적으로 통솔 인원이 제일 많은 공장장이 축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당황스러웠다.

아직도 그쪽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스피치를 할지, 통역을 통해서 의사 전달이 잘 될지. 비서 겸 통역인 <이리나>를 불러 조언을 구했다.

한 시간쯤 후에 그녀가 영문 스피치 초안을 만들어 왔다. 그녀의 실력을 알게 되었다. 깔끔한 문장에 아주 훌륭한 내용이어서 약간의 수정만으로 축사를 완성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개략적으로 이야기 해 주면 본인이 러시아말로 스피치를 잘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날 스피치는 대성공이었다.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행사가 끝나자 모두들 수군거린다.
공장장이 한국에서 온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명 스피치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 행사는 필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위상을 높여 주는 이벤트가 되었다.

자포로지 공장은 2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동구권에서 가장 깨끗하고 선진화된 공장으로, 당시 현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귀빈들이 방문했다.

이렇게 성공적인 공장을 만들기까지는 <이리나>의 도움이 컸다.
그녀는 교육이 있는 날이면 교육 내용을 사전에 완전히 숙지해서 잘 전달하고, 손님이 오는 날이면 투어코스를 사전에 숙지하고 안내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정리하여 브리핑을 하곤 한다. 이것들이 대부분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이디어다.

책임감과 전문성까지 겸비한 모스크바 영문과 출신 갈색 눈의 여비서, 그녀는 비서로서의 기본 소양뿐만 아니라 상사와 직원들간의 가교역할을 하고 보스의 부족한 부분까지 능동적으로 보좌해서 보스를 빛나게 만드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2000년 봄 우리는 열정을 바쳐 건설한 공장과 정들었던 사람들을 뒤로 한 채 귀국 길에 올라야 했다. IMF사태로 대우 그룹이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유럽에 갈 기회가 있어 자포로지 공장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이리나>도 만났다. 사장 비서실장으로 임원이 되어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다.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주도적인 자리에 가기 마련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큰 일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익수소장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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