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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누가 죽였다고 말 안한다윤종호 (81세)/ 감정동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북변동>

다들 누가 죽였다고 말 안한다

평안남도 순천 사리원 출생
1.4후퇴시 단신 남하
군인으로 전쟁 중 3년, 반공청년 부단장 역임

   
▲ 윤종호 (81세)/ 감정동
“1.4후퇴 때 피난 나오면서 개성서 혼자 나왔다. 20살에 결혼했다. 휴전회담 열고 난 다음 아내가 참 대단했다 혼자서 어머니, 가족 데리고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전쟁 중 3년간 군인 생활했다. 국군 입대할 때가 24세 때이다.
백선엽 1사단 586부대에 있었다. 강화도에 있었는데 제대하면서 김포에 정착하게 되었다“

“반공청년 부단장을 했는데 이 일을 할 때는 살상이 이루어진 후이다.
여우재 고개와 김포초등학교 뒷산, 충현탑 아래 등에서 많이 죽였다는 것을 들었다.

치안대들이 빨갱이 잡아다 죽이고 그랬다고 들었다. 대한청년단이 있었고 서북청년회가 있었는데 서북청년회는 이북출신자들이었으며 치안대들은 혼합되어 있었다. 단체는 정확성이 없었다“

“홍두평 벌판에서 인민군하고 치안대하고 싸웠다. 뚝방 있는데서(지금은 길)싸웠다. 옛날에는 소들을 많이 매어놓고 그랬다. 뚝방은 말뚝만 박으면 내 땅이던 시절이 있었다. 좌익의 경기도 책임자가 옹주물에 있었다.

6.25, 5.16이후에도 옹주물로 들어왔다. 옹주물 좌파들은 검단 두밀(대곡동) 산줄기타고 들어왔다. 병찬 아버지도 좌익이었다. 상이용사 탑아래 강훈석씨가 처음에 집 지을 때 사람의 뼈가 나와서 삼태기로 담아내 공동묘지 위에 묻어주었다“

“김포초등학교 뒷산에서도 학교 지을 때 뼈가 나와서 어린 학생들이 보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일들이 20년이 안된 소리다. 땅 작업할 때 나왔다. 누가 죽였다 서로 누가 그랬다 그런 말은 안한다.

그 당시는 비가 오면 흙이 패어지면서 뼈다귀가 나와 반짝거렸다. 40년 전만해도 그랬다. 비가 오면 직원이 뼈다귀가 나와서 반짝이는 것을 무서워해서 데려다 주기도 했다”

“좌우지간 감정적으로 죽은 사람이 많다. 전쟁 후에도 잔뜩 긴장하고 말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을 조사하는 것, 관심을 미리 두었어야 했다. 10년 전만 여론을 수집했어도 좋았을 걸 그랬다. 5.60대는 잘 모른다. 김포에서도 서로 많이 죽였다”
  
 

유인봉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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