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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어져도 누가 죽인 줄 아나홍종기 (87세)/ 양촌면 양곡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양촌면>

사람이 없어져도 누가 죽인 줄 아나

보도연맹이 이쪽 죽인 거는 없고 끌어가기는 했어요.
치안대에서 죽였습니다

   
▲ 홍종기 (87세)/ 양촌면 양곡리
6.25당시에 29살이었다.
“이미 장가를 갔었고 아들이 세 살이었습니다. 50년 12월 제2국민병을 나가서 20세 17세들까지 나갔습니다. 부락에서 16세 17세부터 30세까지 징집을 해서 나갔지요. 굶어가면서 부산까지 하루 주먹밥 하나로 버티며 일주일 훈련받고 기차를 타라고 해서 타야 했다.

총 쏘는 법도 몰랐고 휴전 무렵 전투가 더 심해졌다. 5미터 앞에서 80미리 폭탄이 떨어져서 죽더라고요. 김일성이가 전선지역 맹공격을 지시하면서 3.8선 전선지역이 다 후퇴하고 7월 27일 정전이 되었지요”

“지리산 노고단은 사흘을 올라갔고 밥한덩이에 눈을 녹여서 죽 쑤어서 먹었습니다. 이등병이 일등병이 되고 1등하사가 중사로 특진되고 그랬습니다. 인민군 수백 명 죽였습니다. 양구지구에서의 전투로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우리 마을은 공산당 협조자가 없었어요. 한 사람인가 인민정치 협조했다고 붙잡혀 하는 것을 보았는데 생사는 알 수 없었어요. 내가 군인가기 전까지는 희생자가 없었습니다.

양능 옆 동네인 양곡 3리였어요. 인명피해는 없어 모두 피난을 갔는데 늙은이 빼고 오산, 천안까지 가있다가 왔습니다. 양곡전체에서 빨갱이들(보도연맹), 개인적인 감정 있는 이들은 손가락질하면 죽였어요.

자고나면 어떤 사람이 없어져도 누가 죽인 줄을 아나! 양촌과 대곶에 보도연맹, 빨갱이들이라고 죽은 사람들의 자손들도 있습니다. 죽은 것은 알지만 누가 죽인지는 모르지요. 보도연맹이 이쪽 죽인 거는 없고 끌어가기는 했어요. 치안대에서 죽였습니다”

“인민군들은 우리는 인민을 위해 나왔다고 손바닥으로 한문으로 수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 누가 밥해줬는지 몰라 저희들이 해 먹었지요. 군인 나가 있을 때 아버지인 홍재원(당시 70세) 어머니 아내가 당시 3살짜리 아들 업고 나무해서 살고 가루담배를 사서 팔아먹고 살고 있었다.”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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