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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는 저마다 응어리들이 있을 거예요권순덕(68세)/ 대곶면 초원지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대곶면>

속에는 저마다 응어리들이 있을 거예요

웅덩이에서 작대기로 패죽이던 잔인한 모습 기억
누이 성폭행 안당하려 할머니로 행세 하얀옷 입어

   
▲ 권순덕(68세)/ 대곶면 초원지리
“당시에 열 살 소년으로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6.25에 대한 충격이 있었지요. 쓰르레미 고개라고 검단으로 가는 길로 자치위원장이 바닥빨갱이를 앞세우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본적도 있습니다.

웅덩이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봤습니다. 웅덩이에서 누굴 죽이는지 몰라도 작대기로 패 죽였어요. 살라고 나오면 다시 때리고 또 떠오르면 다시 때려서 죽였어요”

“피난을 가면서 피난길에 사람이 죽어서 시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봤어요. 피난 나가다가 해가 지면 자야 하는데 방이 없으면 돼지우리에 지프레기 깔고 잤습니다. 우리는 소 끌고 잔등에다가 쌀을 싣고 나갔어요. 다른 사람들이 소를 잡아먹자고 해도 같이 피난을 나갔다가 같이 돌아왔어요”

“우리 아버지는 좌익이나 우익에게 다 피해를 보지 않았어요. 배우고 활동한 사람들하고, 똑똑하고 머리좋은 사람들이나 그랬지요. 각 동네 여성동맹 위원장도 예쁘고 활동이 가능한 사람들이 뽑혔어요. 지금 부녀회장 보듯이요. 여기서도 끌어다가 강간했다는 소리도 들렸어요.

그 여성들도 다 죽고, 여자들이 우리 누이만 해도 당시에 16살 17살로 숙녀였어요. 그래서 할머니 행세하느라 하얀 옷 입고 피난가면서도 위장했어요”

“초원지리에서는 중공군들이 닭을 잡아 가는데 아군이 새우젓 통 같은 포탄을 쏘아서 처마 끝에 불이 붙고, 기둥을 치고 논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잠자는 집에 이불위에 떨어져 놀라기도 했고요.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인데 각 담당 선생님이 있어서 교육을 가르치느라 밤에 소집하기도 했어요. 초원지리, 거물대리, 오리산리 등 세 동네가 모이면 애국가등 이북체제를 가르쳤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노래 등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6.25때는 기적적으로 우리 동네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행방불명 된 사람만 1명이 있었어요. 전쟁 이후에 오히려 군인 나가서 죽고, 전염병에 죽고 그랬습니다.

9.28때는 소를 뜯기러 가다가 인민군 잔여 병들이 양민을 붙잡아서 포를 지고 가게 한 것을 보고 놀라서 소를 몰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인민군 패잔병들이 면사무소를 습격했는데 면사무소 직원들이 서류를 콩밭에 숨기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창고에 여성연맹 위원장을 잡아 놓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총알치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터지지 않는 총알이 있었어요. 박격포 알을 뽑아서 화약으로 불꽃놀이 등을 하면서 위험한 놀이지만 하고 놀았어요. 방공호에서 박격포를 분해하기도 했어요.

대장간집 아들이 분해해서 총을 만들어 사냥을 가자고 해서 꿩을 잡으러 가보니 꿩은 없고 산사태 난곳을 쏘니까 총알이 나갔어요. 플라타너스 나무도 뚫고 나가는 것도 봤어요”

“대부분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는 곳은 대곳면사무소 면창고라고, 까만 함석창고가 있었는데 그곳에 갇혀 있다가 송마 4리 소라리 뒷산에서 그랬다고 들었어요. 산 증인들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까만 밤에 이루어졌으니까요. 7촌 당숙도 부면장을 했는데 양곡에서 밤에 집에서 끌려 나가서 죽었습니다.

그 이전에 징용을 보냈다고 앙심을 먹은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서 이리저리 일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한 사람들이구요. 완전한 사상자들은 다 넘어갔습니다. 속에는 응어리들이 있을 거예요. 지금까지도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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