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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안대 등쌀에 약먹고 죽었어요신범수(81세) /통진읍 가현리

Ⅱ부. 김포6.26전쟁비사/주민증언-<통진읍>

치안대 등쌀에 약먹고 죽었어요

다리 부상으로 명예제대, 국가 유공자로
전쟁 중에 백일 된 딸 병으로 잃어
치안대에 고통당하자 약먹고 죽은 사람도 있어


   
▲ 신범수(81세) /통진읍 가현리
“당시 22세로 방위군으로 보초를 서고 있다가 문수산 있는데서 포가 날아왔어요. 탱크로 쏜 것입니다. 양곡으로 포탄 때문에 도망갔다가 밤에 집에 들어갔어요. 인민군들은 인천으로 갔고 나는 집에 숨어 있다가 1차 국민병 영장을 받고 군인을 나갔어요. 숨어 있을 때는 마루 밑창에 파고 들어가 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뚜껑 열고 밤이면 음식을 줬어요”

“인천으로 가는데 화물차에 120명씩 차속에 차곡차곡 싣고 갔어요. 낮에는 이동하고 기차 안에서 나흘을 묵었어요. 밥은 없고 건빵을 주었는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넓적다리를 다쳐서 명예제대를 했어요. 군인 나갔다가 홍천에서 부상당해 몇 개월 부상치료차 병원에 있다가 제대를 하고 집으로 왔어요. 51년도입니다”

“그때는 결혼하고 군대를 나갔었어요. 딸 하나가 있었는데 백일이 채 못 되어 피난을 업고 가다가 병이 나서 죽었어요. 묻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같이 피난을 나간 것이 아니라서 모르지요. 우리 때는 제대라는 것이 없었어요. 군대 나가면 죽으면 손톱 발톱 보내는 것이 전부였어요.

예외로 5차로 명예제대를 했는데 10월에 국가유공자로 등록됩니다. 참전 유공자에서 국가유공자로 되는 거예요. 6.25참전유공자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대한민국이 있는 겁니다”

“제대는 그 이후에도 9차까지만 있었어요. 전쟁에서는 보병이 제일 불쌍한 거예요. 의복은 누비옷, 모자도 누비옷 가원도 산길에서 전쟁을 할 때 민가에서 밥을 지어서 부락 노인들이 지고 기어 올라와야 했어요. 그러면 밥이 다 얼어서 서로 맞붙어 싸우다 못 먹고, 이는 득실득실하고 그랬어요. 저녁에는 인민군이 낮에는 아군이 비행기 지원을 얻어서 점령하고 그랬어요“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세워놨는데 국회에서는 뭐하나 몰라요 이제까지요. 2007년 보훈청에 가서 재신청하니 보훈병원에 가서 검사해라 하는데 58년 전 큰 상처였는데 이제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본단 말이예요. 보훈청장 걸어서 재판하라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다쳐서 들어온 사람도 나 하나고요 1차로 나간 사람도 나 하나였습니다”

“우리 동네는 3,40호쯤 되었는데요. 그 때 일을 이야기하려면 골치가 아파요. 별별 일이 다 있었는데 개인감정 같은 거 다 있었어요. 의용군으로 끌려 나가서 소식 없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 두 명 있었어요.

부역자들이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산 사람들이었다가 반장을 하며 감정 있는 사람들을 막대하니까 그 시절 지나고 밀리니까 치안대들이 죽였어요. 죽은 사람들 가족들도 떠나고요. 뿔뿔이 갔어요.

지금은 공장만 있고 1리에서부터 5리까지 있었는데 사람들을 모아놓고 죽인데는 없고 치안대들한테 고통을 당하니까 약 먹고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김진수발행인  mr@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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