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김포역사 김진수의 김포역사이야기 김포의 6.25전쟁비사(2008)
3. 김포 납북(피랍)자 자료 통합 분석현황김포6.25전쟁비사- Ⅳ.6.25전쟁 중 김포납북자 실태조사 P310쪽

3. 김포 납북(피랍)자 자료 통합 분석현황


위에서 6.25전쟁 중 납북(피랍)자에 대한 기본 자료들을 소개하고 김포지역의 납북자 명단과 그 자료들을 소개, 분석하였다. 이 장에서는 김포지역 납북자가 조사된 4개의 자료에서 각 납북자 명단을 통합하여 중복자를 제외하여 집계한 김포 최종 납북자 명단 현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1951년 전쟁 중 부산에서 <6.25사변 피납치 인사 가족회의>에 의해 조사된  <6.25사변 피랍인사 명부>에는 김포지역 피랍자 인사명단이 총 9명으로 파악되었다. 두 번째로 1952년도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其 二)>에는 1,348명, 세 번째 자료로 1954년도 작성된 <6.25동란으로 인한 피랍치자 명부>에 73명, 마지막으로 1956년 대한적십자사가 접수한 <실향사민 등록자 명단>에 37명이 조사 되었다. 각 자료별 김포지역 납북자 인원은 다음 <표>와 같다.

   
▲ 자료별 김포지역 납북자 인원현황


각 자료별로 파악된 김포지역 피랍치자 명단을 1차적으로 각 자료별로 동일인물(중복자) 여부를 조사했다. 중복검사후 51년도와 54년도 명부에서는 중복자가 없었으나 52년도 자료에서는 19명, 56년도 자료에서는 2명이 파악되었다.

   
▲ 자료별 김포지역 납북자 동일인조사

다음으로 각 자료별로 명단을 확정(1,447명)한 후 4개의 명단을 통합 동일인물(중복자) 여부를 조사하였다.
총 1,447명 중 중복자가 52명이 조사되었으며 4개의 자료를 통해 확인된 김포지역 <피랍치자 명단>은 총1,395명으로 최종 파악되었다.

그러나 이 명단 수치는 기술적인 차원의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조사자가 분석한 자료는 <한국전쟁납북자료원>으로부터 김포지역 명단을 데이터로(엑셀)로 받은 것이다. 즉 1차 자료를 판독하여 2차 자료로 데이터베이스화 한 것이다. 따라서 판독(한문해석)하고 입력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조사자가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에 잘못 기록된 사항을 발견하고 수정을 가했다. 그러나 시간부족으로 원본대조를 실시하지 못했다. 추후 시간을 갖고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1) 지역별 납북(피랍)자 분포

경기도 시ㆍ군별 납북자 수중 1,000명이 넘는 지역은 강화군(1,485명), 김포군(1,395명), 파주군(1,383명), 화성군(1,231명), 여주군(1,110명), 안성군(1,028명), 부천군(1004명) 등이다.
경기도의 납북자 수는 18,270명이며 김포지역이 1,395명으로 강화군(1,48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이다.

   
▲ 끌려가는 양민들(출처;KBS영상실록 1950년)

김포지역별15) 납북자 수는 하성면이 248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대곶면 219명, 김포면 155명, 월곶면 151명, 양촌면 142명, 양동면 137명, 검단면 122명, 고촌면 101명, 양서면 94명, 기타 26명(기록이 없거나 김포이외의 지역)순이다.

리단위에서는 하성면의 후평리가 57명으로 가장 많은 납북자가 발생되었으며 두 번째도 하성면 석탄리로 47명이 피랍되었다 세 번째로 많은 납북자 리지역은 김포면 북변리로 42명이다.

<도표>김포지역 면별 납북자 현황


2) 연령별 납북자 분포

납북자들의 연령별에 따른 지역별 납북자 수를 살펴보면 김포면의 13세가 최연소 납북자로 파악되었다. 최고령은 김포면의 74세 노인이다.

10대가 99명, 20대가 1,023명, 30대 230명, 40대 23명, 50대 17명, 60대 2명, 70대 1명이다.
가장 많이 납북된 연령은 20세로 168명이며 다음으로 152명이 납북된 22세, 112명이 납북된 24세, 111명이 납북된 21세 순이다.

   
▲ 김포지역 면별 납북자 현황

 

   
▲ 김포지역 연령별 납북자 현황(2-1)

 

   
▲ 김포지역 연령별 납북자 현황(2-2)

 각주/15) 1950년의 김포군의 행정구역은 김포면, 고촌면, 양촌면, 대곶면, 월곶면, 검단면, 하성면, 양동면, 양서면으로 총9개면이었다. 양동면과 양서면은 19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검단면은 1995년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다. 

   
▲ 1954년 3월 11일(6.25사변 피랍치인사 가족회)가 주최하여 덕수궁 뒤에서 송환촉구 시위를 하고 있다.(출처;국가기록원)

   
▲ 김포지역 직업별 납북자 현황
3) 직업별 납북자 분포

김포지역 납북자들의 직업별 분류를 살펴보면 경기공중생(1명), 경찰관(4), 공무원(6), 공업(4), 교원(14), 군인(1), 노동(21), 농업(1,256), 무직(20), 문관(2), 사원(3), 상업(4), 서기(6), 선업(3), 운전수(4), 정미업(1), 청년단(1), 토건업(2), 학생(38), 기록무(4)로 나타났다.

4) 피랍일자별 납북자 분포

전국적으로 1950년 7월, 8월, 9월의 3개월 동안 동시에 집중적인 피랍이 이루어졌다. 김포지역도 조사 분석한 결과 7월부터 9월까지 집중적인 피랍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김포는 1950년 8월에 집중적으로 피랍되었다.

피랍자 총 1,395명중 1950년 7월에 427명, 8월에 886명, 9월에 45명, 1951년 1월부터 9월까지 18명(기타 19명)이다.

김포지역에서의 납북자의 최초 피랍일자는 1950년 7월 3일이며 마지막으로 피랍된 시기는 1951년 9월 20일이다. 또한 가장 많은 인원이 피랍된 일자는 1950년 8월 2일이다. 총 428명이 피랍되었다. 다음으로 1950년 7월 20일에 121명, 8월 5일에 103명이 순이다.

하루에 가장 많은 피랍자가 발생한 면은 1950년 8월 2일 132명이 피랍된 대곶면이며 다음으로 같은 날짜에 101명이 피랍된 양촌면, 76명의 월곶면 순이다.

 

   
▲ 김포지역 피납일자별 납북자 분포(3-1)
   
▲ 김포지역 피납일자별 납북자 분포(3-2)
   
▲ 김포지역 피납일자별 납북자 분포(3-3)

조사를 마치며

6.25전쟁 중 김포지역의 납북자 혹은 피랍자로 규정한 총1,395명의 김포출신들이 납북됐다. 물론 이 수치는 아직 확정적인 명단은 아니다. 이보다 더 많은 수가 증가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축소될 수 있다. 그 개연성은 다양하다.

첫째 1,395명의 수치는 전쟁와중에 조사된 자료라는 점이고 둘째는 이 수치 안에 들어간 인물 중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파랍자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명단속의 인물들중 상당수가 이미 김포지역에서 피살된 인물이었으나 가족이 그 사실을 몰라 피랍자로 신고된 인물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자료의 내용은 인민군에 의해 피살되거나, 납북되기도 했지만 국군에 의해 또는 우익청년단원과 일명 바닥빨갱이로 불리는 좌익에 의해 피살된 인물들이 다수 포함된 수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1,395명의 수치에 대한 정확성 여부를 따지거나, 많고 적음의 비율이 중요한 사실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김포지역에서 1천여 명이 넘는 인물이 피살되거나 납북된 사실을 전쟁이 끝난지 5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수치스러움이다.

앞으로 김포가 극복해야 할 지역적 과제가 있다면 반드시 이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 가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진수 발행인  js@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진수 발행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