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 다시 한하운을 생각하며 ”

   
   ▲김병중(시인/문학평론가)
예술가 중에는 생전보다 사후에 더 빛을 보는 분들이 많다. 이는 인간이 작품세계나 진실을 바로 보고 깊게 관찰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에만 급급하여 많은 편견으로 가려져 있다는 뜻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진실이 밝혀지고 가치가 인정되어 더 오래도록 고전적 예술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하거나 보도할 경우에는 보다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정확하지 않은 내용은 주석을 달아 특정인만의 주장이라는 문구를 덧붙여야 한다.
 
몇 달 전 김포 장릉 공동묘지에 있는 한하운 시인 묘소에서는 시인의 서거 35주기를 맞이하여 간단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그 행사와 관련하여 검증되지도 않은 시인의 양녀와 사위가 등장하고, 지방지 언론 보도 등에서는 서모씨가 한하운 문학상 제정 기금을 모아 도주하였다, 한하운 장학금을 수혜받았다, “반 평짜리 묘 속에 시인을 방치한 것”,  “시인의 유택을 애기봉 이전을 약속했다”는 등의 내용은 우리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먼저 모 시인이 언제부턴가 양녀(수양딸)와 여식이라고 자처하고 나서고 있고, 그녀의 남편은 어느새 당당하게 사위로 등장하고 있다. 양녀라고 자처하는 그 분은 15세의 나이에 단순히 시인을 좋아하고 본인이 그렇게 불렀다고 하여 양녀가 될 수 없으며 주변인들이 인정할만한 특별한 증거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친자도 부모에게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 앞에 당당하게 자식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인륜이다.

시인이 돌아가실 무렵 문둥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해 몇몇 되지 않는 제자들도 나서지 않았고, 후손마저 없어 부인이 겨우 시신을 수습하여 김포 장릉 골짜기 공동묘지에 버려지다시피 묻었을 뿐이다.

시인의 장례식에 흔하게 등장하는 조시낭송 한 편 없이 쓸쓸히 파랑새가 되어 장릉 묘역에 영면하고 계신 보리피리 시인은 그동안 낯선 이방인으로 쓸쓸히 누워계셨다. 이후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아무도 알지 못하다가 김포문협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조성휘 시인이 십수년 전 한하운 시인의 유택을 찾아 이를 김포문학지에 발표하면서 한하운 시인 묘소가 재조명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후 출판사를 경영하는 서 모씨가 후손과 가족, 제자가 없다는 점을 악용, 한하운 문학상과 노천명문학상을 제정하여 상의 명칭이 비슷비슷한 최우수상, 대상, 본상 등을 만들고 분야도 시에 국한하지 않고 시, 소설. 평론까지 시상하는 웃지 못 할 사건이 김포에서 발생되기도 했다.

이 무렵 양녀로 자처하신 분은 지탄의 대상이 된 문제의 서모씨 출판사에서 자신의 첫 시집을 냈고, 그 책 소개에서 “한하운 시인에게서 수양딸처럼 시를 배운 저자의 첫시집”이라는 앞뒤가 맞지않는 내용으로 독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만일 생전 병고에 계실 때 아버지처럼 모시고 사후 장례식을 치른 후 묘지라도 가꾸며 제사를 지내왔다면 수양딸로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내용으로만 보면 첫 시집에서 저자가 말한 “수양딸처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하운시인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것도 당시의 상황을 유추해보면 한하운시인이 문학을 하지말 것을 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하운 장학금’ 수혜를 받았다는 보도내용도 당시 한하운장학회가 정식 설립되지 않았다면 ‘한하운시인의 학비 도움’을 받았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다. 또한 한하운 시인을 “반 평짜리 묘 속에 방치한 것”이라는 질책을 “누가 그를 그렇게 방치한 것인가? 라고 반문해 보자. 그렇게 되면 부인이 일차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수양딸 책임이며, 그 다음은 김포문협이나 김포시청 등 사회적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유택을 애기봉으로 옮긴다는 일부 문인들의 주장이 있고 이를 시장님도 약속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재검토 되어야만 한다. 한하운시인은 생전에 엄청난 천형으로 인해 손과 발이 빠지고 코가 떨어져 나가는 등 무서운 질병으로 세상에 처참하게 버림받으며 극심한 고통과 상심의 시간들을 안고 괴로워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지금에 와서 그의 묘를 파내어 번듯한 봉분을 만들고 커다란 비석을 세워 홀로 누워있게 만든다면 오히려 민중과 더불어 살아오신 삶을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지금의 공동묘지에서 소리 없는 다수의 군중들과 맘껏 파랑새로 부활하여 세상을 노래하는 것이 더 좋을 것만 같다.

제삿날만 되면 산소에 모여 수준낮은 축시나 낭송하고 자기가 양녀와 사위, 제자라고 호가호위하는 행태는 근절되어야만 할 것이다. 행정 당국에서도 “한하운 시문학상”을 만들고, “도로명도 한하운로, 파랑새로, 보리피리로”로 명명하며, 길 주변으로 보리밭과 보릿고개를 조성하는 등의 사업도 한번쯤 구상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은 한하운 시인의 생애나 업적, 신변잡기 등에 대하여 아시는 분들이 고령이지만 몇몇 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김동리, 김광섭, 모윤숙씨 등을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신동한, 최절로, 성기조 선생님 등을 통하여 시인의 생애를 더 고찰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생전보다 사후에 자식 노릇 제대로 하겠다는 분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라 보다 정확한 검증을 통하여 한하운 시인의 명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된다는 점과 함께 보다 미래 발전적인 한하운 시인의 재조명을 통하여 파랑새 시인의 시세계의 영역을 더 넓히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김병중  mr@gimpo.com

<저작권자 © 미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