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만
(전 김포문화원장)

연전 이 아무개씨는 일년 농사를 지어 수확해서 48번 국도 변에 위치한 동네 공동창고에 보관했다.

초겨울 어느 날 옆 집 음식점도 손님이 없어 일찍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날 밤 간 큰 도둑은 창고 문고리를 끊고 창고 안에 쌓아두었던 볏가마를 몽땅 다 가져갔다.

추측 컨데 대형 트럭을 창고 깊숙히 진입시켜 마치 자기 물건을 실어가듯 위장한 대담한(?)도적이었다. 아직도 그 도둑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 아무개씨는 경제적 손실도 속상하지만 일년내 피땀 흘려 그 결실로 거두어 드린 농산물이기에 더 부화가 치민다고 했다. 해 먹을 것이 없어 농사꾼의 피땀을 훔쳐 먹나?천벌을 받을 거야...... 이 아무개씨의 표정은 자못 처절하기까지 했다.

요금 농촌은 개도도둑을 비롯해 농산물 좀도둑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잠깐 집을 비우고 나들이 간 사이에 울안에 있는 매실을 다 따가고 과목마저 망가뜨려 놓고 간 경우도 있고 그 양태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외환관리위기 (IMF)이후 경제사정이 안 좋아서 그런지 별 양심의 가책없이 농민이 공 들여 키워 놓은 농산물을 슬쩍하는 생계수단형 좀도둑들이 횡행하고 있다. 농산물을 도둑들에게 잃었을 때 농부의 상심은 크고 깊다.

지금 농촌을 지키고 있는 농사꾼은 거의가 6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땅만을 믿고 산다. 땅은 거짓이 없고 뿌린 대로 가꾼 대로 농사꾼에게 보답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사지어 돈 되는 것이 없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뿌린 대로 거두는 기쁨을 주는 지심(地心) 때문에 어려운 농사일을 계속하며 농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모두의 생명 줄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생명산업이 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들은 국가에서나 사회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55세가 넘으면 지자체는 물론이고 정부와의 모든 각종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일반 중소기업들이 누리는 그 흔한 저리의 시설자금이나 운영자금은 꿈도 못꾼다. 농업을 단위기업으로 인정해 주기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높은 상호금융에 의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경영수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 농가 가구 당 농업소득 증가율은 1985년-1994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4.2%이고 같은 기간 GNP 성장률은 9.1%로서 도시 근로자 가구 당 소득 성장률 8.5%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며 1994년에서 1999년까지 농업생산은 연 3.2%씩 증가했으나 영농비의 증가와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농산물가격은 연 1.7%씩 하락하여 농가소득증가율은 (-)1.6%로 감소했다. 그간 정부가 분야별로 막대한 투융자 지원을 한 경우도 있으나 이에 불구하고 농산물 가격은 상대적으로 하락을 면치 못했고, 농사지어 돈 되는 것이 없는 실정이 되었다.

더욱이나 전국 47.357개의 농촌마을 중 문화복지 시설이 전혀 없는 마을이 52.2%나 된다고 하니 오늘의 우리 농촌 실정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한다.
지난 봄 우리 농민은 90년만의 봄 가뭄을 겪었고 이 여름엔 폭우와 홍수의 피해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온 강토가 가뭄으로 타 들어가고 있는데 양수기 만드는 회사 직원들은 태업과 쟁의로 조업을 중단하고, 양수기 몇 대 가지고 와서 전달식 이벤트를 하는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면면과 금일봉을 꼭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모금함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연출위주의 행각들이 농심을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벼랑 끝까지 와 서 있지만 농민을 더 이상 우민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농업은 우리의 생명산업이자, 환경산업이다. 이제 농촌을 단순히 목가적(牧歌的)시각으로만 보아선 안되며 농촌이 생명산업의 현장으로, 친 환경적 산업으로 살아나고 농민이 생명 산업의 역군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와야 한다.그것이 오늘 이 나라의 미래, 그리고 건강한 우리들의 다음세대를 지키는 아주 자명하고 소박한 생명철학임을 깨달아야 한다.
<제114호 2면/2001. 8.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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