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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년 마을을 품은 ‘여인의 존재’‘이기울’로 불린 용강리, 문수산 자락에서 ‘이계월’을 만나다

인품과 덕성으로 마을에 큰 영향…수세기 마을이름으로 구전
번성했던 강녕포 주막거리, 풍류와 미모 통진현까지 입소문
 
문수산 자락 한 줄기, 한강 하구 물줄기 사이 평화롭게 자리를 튼 용강리 마을. 옛 법정리였던 흥룡리(興龍里)에서 용(龍)과, 강녕포(康寧浦)에서 강(康)을 합쳐 용강리(龍康里)라 명명된 이 마을을 지역의 어른들은 지금도 ‘이기울’이라 부른다.

지금은 197여 가구가 산재해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과거 강녕포구가 번성했던 고려시대에는 300여 호나 되는 촌락이 형성돼 포구 주변에 모여 살았다.

특히 뱃사공을 상대로 한 주막거리가 유명해서 통진현에서도 왕래가 잦았는데 당시 어르신들이 ‘이기울 간다’고 하면 이곳 포구 주막거리를 찾는 말로 통했다.

지난 28일 이 마을에서 4대째를 잇고 있는 이영범(47) 이장댁을 찾았다. 이 이장의 조부 이익현(83) 옹으로부터 수세기동안 이어져온 마을이야기를 듣기 위함이다. 지역문화전략연구원 정현채 대표와 동행했다.

이익현 옹에 따르면 고려시대 강녕포 주막거리에는 특히 풍류에 능하고 미모가 수려해 통진현까지 그 이름이 알려진 한 계집이 있었는데 그이가 바로 ‘이계월’이었다.

고려시대 수도였던 개성에서 내려와 강 건너 이곳 강녕포에 터전을 잡고 장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구월심 고향의 지아비를 그렸다 한다. 이 옹은 주막거리 대표주자였던 ‘이계월’이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돼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강녕포 마을 전체가 ‘이기울’로 통칭돼 불려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계월의 묘는 ‘김포군 지명유래집’에 「쐐기부리에 있는 고려때의 기생 이계월의 묘라 전해오는 고분」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기록상 오류로 짐작된다.

기생신분으로 지아비를 섬길 리 없고, 기생의 묘를 썼다는 유래는 전국적으로도 쉽사리 찾기 어려운 이야기다. 무엇보다 고려시대엔 ‘기생’이라는 직업적 신분도 없었다. ‘기생’은 조선시대 들어서 진화된 계급사회의 소산이다.

고려시대 이후 6백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을이야기로 회자되고 있는 이계월은 고려가 망하면서 몰락한 양반댁의 규수로 피난중에 지아비와 헤어진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이익현 옹을 따라 문수산 자락 쐐기부리 지척에 있는 ‘이계월의 묘’를 찾았다. 동행한 정현채 대표가 추석연휴를 이용해 벌초했다. 신기하게도 참나무 그루가 묘를 움켜쥔 모양새다. 이 옹의 아들 영범씨에 따르면 어릴 때 없던 나무로 50~60수의 세월동안 묘지기 역할을 했겠다.

이 옹은 “주민들이 자식조차 없던 일개 주막집 여인의 묘를 써준 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지금이야 알 수 없지만 여인의 인품과 덕이 마을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강녕포는 과거 강화 산인포와 서울 마포, 김포 문산포, 조강포와 함께 한강 5포로 불렸다. 용강리는 1950년 6.25 전쟁 전까지 반농반어 촌으로 수로와 육로의 교통이 발달한 곳이다. 53년 휴전 이후 물길이 막히면서 쇄락하기 시작한 민통선 마을이다. 전쟁의 아픔상처를 간직했지만 대신 청정한 환경을 얻었다.

시는 산과 강, 수로가 있어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매화마름서식지가 있으며 백로가 서식하는 등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는 데다 콩과 순무, 쌀 등 먹거리가 풍부한 용강리 마을을 농촌전통체험마을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역문화전략연구원 정현채 대표는 “구전으로 전해져온 이계월 이야기는 자연적이고 집단적이며, 민족적이고 평민적이어서 마을의 생활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유형의 문화자원 못지 않은 생명력이 느껴진다”며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해야 할 지역의 문화적 뿌리”라고 평가했다.

   
▲ 용강리 주민 이익현(83) 옹이 이계월의 묘를 가리키며 마을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황인문 기자  im@gimp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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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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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산 2010-10-05 12:54:15

    뿌리를 알고, 뿌리를 튼튼하게 해야 줄기도 무성하고 열매도 풍성합니다. 미래의 김포 신도시를 위해서 매진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김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일에도도 매진해야 풍성한 도시가 되겠지요! 아무쪼록 이땅위에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귀울이고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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