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봉
(사)김포여성의 전화 공동대표


사이6남매를 기르신 우리 어머니의 일년 살림은 형제들의 집을 순회하면서 시작하고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낸다.

10여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시작된 이 걸음은 늘 겨울이면 겨울 옷 한 가방, 여름이면 여름살이로 가방의 내용이 바뀐다.

때로는 어머니의 이런 살림이 한 곳에 정착하기를 바란 적도 있지만 그런 대로 어머니와 우리들 자식들이 골고루 서로의 책임을 전가하지 못하게 하는 면도 있다.

평생을 사시던 시골집을 정리하고 서울에 집을 마련해 아들네와 합친지 이미 이십 여년이나 되지만 어머니는 결코 서울사람이 될 수 없었고 고추 심고 호박 심는 딸네 집이 더 익숙하고 친근하셨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실속 없는 셋째 딸네인 우리 집에 머무르는 시간은 일년 중의 반은 족히 되리라.

살림을 무섭게 하신 우리 어머니의 경험에 의하면 나는 살림을 가장 못하는 딸에다가 늘 뭔지 바쁘고 어머니가 계셔야 그나마 질서가 생긴다고 보시는지 다른 자식들의 집을 휑하니 돌아 우리 집에 오시면 장독항아리에서부터 다시 점검을 하시는 일로 시작한다.

행여 오라버니 집에서 섭섭한 일이나 올케와 마음이 안 맞은 일은 주저리 주저리 털어놓으시는데 나는 그를 통해 어머니의 마음을 읽고 노년기의 소외감을 느끼며, 또 나의 노년기를 상상한다.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이 택도 없는 오해를 열을 내시며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그렇게 늙은 나이에도 자식걱정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모습에 숙연해 지면서 부모는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금년에는 윤달이 낀 탓에 올케가 수의를 마련해 놓았나본데 영 마음에 안 내키셨든지 불만이 많으시다.

올케도 하느라고 비용들이고 마음을 썼나본데, 어머니는 명주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옷감으로 지어진 옷을 수의로 마련하고 싶으셨던 눈치다.

“엄마, 너무 속상하시지? 그까짓 3백 만원이면 어때. 엄마가 가장 좋은 것으로 하세요. 평생 고생하셨는데 왜 노인네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자기들 마음대로 해?”내가 짐짓 화를 내는 듯 소리를 높였더니 한참 불만스럽던 어머니의 마음이 하늘로 날아갔나보다.

“아서라. 얘. 그까짓 죽으면 썩을 놈의 것 아무려면 어떻겠냐. 괜히 형제들 마음만 상할라” 금방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누그러지셨다.

어머니와 올케는 같은 여성으로 가장 잘 이해를 서로 하는 듯 하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사이이다. 올케와 나는 똑같이 어머니의 실수나 단점을 읽을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때로는 감정도 상한다. 피를 나누어 주었다고 무조건 부모가 백 퍼센트 이해되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나 똑같아지지 않던가! 왜 그렇게 굳어질 수 밖에 없었는가 역사를 이해하면 어떨까? 누구나 그 개인사를 통해서 그의 현재를 보면 화가나기 보다 연민이 느껴진다.

그럴 때 그가 내게 어떤 행동을 한다해도 전달되어 오는 강도는 훨씬 다르다. 이는 나와 시부모와 관계에서도 통했었다.

어찌하랴! 우리는 마음이 덜 상하는 세상을 살고 싶은걸.

우리가 누구를 보든지 꼭 그가 살아온 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 그를 다시 바라볼 일이다.

그러면 훨씬 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생기지 않던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삶의 길이와 폭이 달랐던 사람들은 행동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살아온 과정에서 굳어진 생각들이로구나 하고 돌아보면 우리는 어느 사이 덜 속상하지 않을까?
<제115호 4면/2001.8.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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